감상글(책)

<소설> 빨간 풍차가 있는 집

톰소여와허크 2025. 2. 1. 21:44

 

장정옥, 빨간 풍차가 있는 집, 부카, 2023.

 

소설 중 표제작을 다시 훑어본다. 빨간 풍차에서 파리의 물랭 루즈가 우선 떠오른다. 물랭 루즈 하면 파리 몽마르트와 로트레크가 생각나는 정도가 나의 상식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와 헷갈렸던 기억을 더듬어 정리해보면, 르누아르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와 고흐가 1886년부터 두 해 동안 여러 점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몽마르트 언덕 위 방앗간으로부터 유래한다. 방앗간에서 갈레트()와 음료를 팔던 것이 술집과 무도회장을 겸한 카바레로 이어지고, 이후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장소를 옮겨 현재까지 식당으로 영업중이란다.

물랭 드 라 갈레트와 달리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위치한 물랭 루즈1889년에 만들어진 카바레다. 옥상의 빨간 풍차는 실제 동력을 생산하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은 장식용이다. 물랭 루즈의 간판은 단연 화가 로트레크다. 물랭 루즈의 무희와 종업원을 지속적으로 그렸고 나중엔 가게를 홍보하는 상업적인 포스터를 즐겨 그리면서 이 분야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한다.

소설에서 빨간 풍차 역시 물랭 루즈와 관련이 있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소설 속 여관 주인은 남자를 잘못 만나 사채를 뒤집어쓰고 발목이 잡힌다. 쪽방이 연결된 변두리 여관을 운영하는 그녀는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옥상의 빨간 풍차 장식으로 대리만족한다. 빨간 풍차 집은 창문이 없다. 방세를 떼먹고 창문으로 도주한 손님이 생기면서 합판으로 창을 봉한 것이다. 1.5평 공간에 창도 없는 막다른 끝과 같은 이곳은 절망의 공간이면서 마지막 희망을 간직한 공간이다.

서사의 주인공인 는 누군가 오려놓은 베니어합판으로 창을 몰래 누리는 특별한 행운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니 희망이 작아도 그만큼 가열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것이다. 어렵게 일군 사업이 망하게 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중에 는 인력시장을 전전하며 유품정리사 일을 돕기도 한다. 이 과정에 돌봄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은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기도 하고, 실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화가와 동행하기도 한다. 화가는 창문이 있는 의 방을 물려받고 빨간 풍차의 날개를 페인트칠 하려는 중에 가족의 급한 연락을 받고 떠난다. 소설 속 역시 의욕을 내지만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빨간 풍차가 있는 집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작가는 후기에, 이 책엔 인생이 실패로 뒤엉킨 사람들의 불안한 시간들이 칡덩굴처럼 얽혀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그런 실패자에게 위로를 보내는 마음으로 작가는 소설을 쓴다. “정신을 차리고 있는 한 실패는 하나의 관념으로 머물고, 어느 순간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요령도 생긴다는 말이 인상 깊게 와 닿는다.

고통의 길을 참고 걸어야 한다고, 길 위에 답이 있다고 작가는 덧붙인다. 앞서 물랭 루즈와 관련된 화가들의 삶도 그렇다. 로트레크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어릴 때부터 뼈가 약하고 키가 자라지 않는 콤플렉스를 견뎌야 했고 알콜의존으로 병을 키웠다. 르누아르는 가난한 가계에서 태어서 공장 직공으로 일하며 그림 실력을 쌓았고 말년에 관절염에 시달리면서 손에 붕대를 감고 그림을 그렸다. 고흐의 불행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소설집을 읽으며 웃었던 한 대목을 인용해둔다. 소설 쓰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외로움 많이 타고, 민감해서 화를 잘 내고, 오해 잘하고, 잘 울고, 술 마실 돈도 없어서 늘 술값을 대줘야 하고, 그러면서도 혼자 세상 고민 다 짊어진 것처럼 심각한 인간들. 세상에 소설 쓰는 인간보다 복잡한 것들이 없는데도 무슨 영문인지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던가하는.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