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동화> 산에 산에 피던 꽃

톰소여와허크 2025. 3. 23. 21:43

심후섭, 산에 산에 피던 꽃, 웅진출판, 1986.

 

 

-『산에 산에 피던 꽃은 교육자이기도 아동문학가인 심후섭 작가의 동화집이다. 동화를 읽으니 출판 당시 고1이었을 그때의 내가 읽었어도 퍽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지금의 어른이 읽어도 소환되는 추억이 많을 듯하다.

표제작인 산에 산에 피던 꽃’(표지, 본문 그림은 이철수)은 조상 제사에 참여한 초등학교 5학년 뿌뚤이의 체험이 주요 내용이다. 진설하고 음복하는 제사 풍경 중에 촌수나 항렬에 따라 나이 많은 어른이 어린 사람에게 높임을 하는 모습을 보며, 반세기도 안 되어 많은 것이 바뀌어 갔다는 걸 느끼게 된다.

제사와 성묘를 앞둔 뿌뚤이가 새벽에 오줌 누러 나왔을 때의 안개 낀 시골 풍경은 정겹기도 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계곡물 소리는 조르륵 조륵 찰차르르……하고 풀벌레 소리는 찌르륵 찌릇 찌릇!”하단다.

성묘와 별도로 친척집 소녀 순녀와 설렘이 있는 모험의 시간도 기다리고 있다. 뿌뚤이는 도토리 어원 이야기도 잘한다. 다람쥐 잡기는 시늉만 하고, 가재 잡이는 실제 성공해서 순녀 앞에서 체면을 세운다. 내년에 만나자고 약속했던 순녀는 다시 만나지 못한다.

 

동화에서 제사를 위해 친척들이 모인 장소는 청송 보광사 만세루(萬歲樓). 만세루는 사찰 누각 이름에 많이 쓰인다. 고창 선운사, 양산 통도사, 청도 운문사, 김천 직지사 안동 봉정사 등 내로라하는 사찰에 만세루가 있다. 법회 행사 때 주로 쓰이지만 주변 경치를 보며 차 공양하는 장소로도 이용된다.

보광사도 사찰이지만 특이하게도 이곳 만세루는 애초부터 청송 심씨 시조의 묘를 관리하고 추모하는 묘재각의 역할을 했고 그 전통이 쭉 이어오고 있다고 하니 불교와 유교가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청송 출신의 심후섭 선생도 청송 심씨로 짐작된다. 그런즉 이 동화에도 작가 심후섭의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된 걸로 보인다. ‘독짓골로 간 덕호네’, ‘대곡 할머니와 텔레비전, ‘북치기 할아버지편을 읽으며 이전 시대의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던 작가의 뜻도 헤아리게 된다.

 

동화는 손으로 꾸미는 이야기가 아니고, 진실되게 살아갈 때 거둘 수 있는 열매가 아닌가 합니다.”하는 작가의 후기에 마음으로 밑줄을 그어둔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