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나무로 읽는 삼국유사
김재웅, 『나무로 읽는 삼국유사』, 마인드큐브, 2019.
- 일연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나무 51종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나무가 언급된 삼국유사 현장을 답사하고 해당 나무뿐만 아니라 볼 만한 답사지 주변의 나무도 살피고 소개도 한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나무에 초점을 두었다기보다는 나무가 언급된 삼국유사의 대목을 이야기 형태로 잘 발췌하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해서 공감을 자아내는 구성이다. 여러 차례의 답사를 통해 완성된 책인 만큼 실제 삼국유사 관련 여행지 답사 안내서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
경주 경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탄생한 계림에 왔을 때, 저자는 황금으로 만든 궤가 나무 끝에 걸려 있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갖고 공부와 상상을 더해간다. 이 장면을 그린 조선시대 문인 화가 조속의 <금궤도>를 보며, 풍기는 분위기만으로 나무 이름을 맞추기가 어려운데 저자는 그 나무가 참느릅나무일 것이란 생각을 한다. 경주 계림 비각에 참느릅나무 두 그루가 있는 데다 느릅나무가 월지국에서 온 쇠북종을 매달 만큼 강하기에 금궤가 걸리고도 남는다는 추정을 덧붙인다.
저자는 계림 숲의 생명을 다해가는 고목에도 눈길을 준다. 속을 비우고 부름켜만으로 꽃을 피우고 있는 500년 회화나무와 지지대에 얹혀 생명을 이어가는 참빗살나무, 서로 얽혀 있는 팽나무와 느티나무의 모습을 소개해 두었다. 나무에 관심을 갖고 계림을 찾는다면 다녀간 사람 저마다의 나무가 하나가 생길 것도 같다.
경주에 계림 숲이 있다면 경산 자인엔 계정 숲이 있다. 원효는 계정 숲 인근 밤나무 아래에 태어난다. 부친 옷을 밤나무에 걸어두었다 해서 그 나무를 사라수(娑羅樹-옷을 걸어둔 나무)라 부른다. 원효가 출생한 곳에 사라사, 살던 집터에 초개사가 있는데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하지만 지금의 제석사 위치와 관련이 있다는 의견을 소개하고 그곳을 방문했을 때 입구에 팽나무를 만난 기억을 적어두고 있다. 제석사 팽나무 고목은 바로 서지 않고 눈에 띄게 휘어져 있는데 “허리가 굽은 팽나무 줄기가 일주문처럼 늘어져 있다”는 표현이 그럴듯하다. 현재, 제석사 밤나무(당시의 밤나무로 보긴 어렵지만...)는 고사했고, 후계목이 자라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저자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과 그의 제자 운문사 주지였던 김혼구의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한다. 일연은 인각사에서 입적하고 6년 뒤 김혼구의 주도로 보각국사비를 짓게 된다. 왕희지 글씨를 모아서 쓴 비문은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지만 탁본이 남아 있어 2006년 비를 새로 재현해 놓은 상태다. 보감국사 김혼구의 비석과 부도는 밀양 영원사지에 있다. 저자는 “영원사지에는 혼구의 생애를 적은 비석은 사라지고 귀부와 이수가 대추나무 밭 속에 납작 엎드리고 있다. 스승과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를 생각하면서 혼구의 귀부와 이수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 대추 밭에 온 저자는 저절로 되는 건 없다는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을 떠올리는데 그 폐사지에도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이동훈)
* 사진은 2024년 9월 제석사...팽나무와 밤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