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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국수 / 신순임

톰소여와허크 2014. 6. 12. 13:29

건진국수 / 신순임

    

 

무첨당 건진국수의 시발점은 대제부터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되직하게 반죽하여 안반에 놓고

홍두깨로 살살 밀면 쫀득쫀득한 면발

 

물이 팔팔 끓을 때 흔들어 가며 면을 넣어 김이 한번 오를 때까진 젓지 않아야 긴 면발을 얻을 수 있다 중간에 저으면 젓가락질이 쉽지 않게 면발이 짧아진다

두어 번 김 올리고 찬물에 헹구어 나물국물로 비벼 제사상에 올린다

   

여름은 건진국수로 겨울은 칼국수로 손님상 단골메뉴였던 국수

제철 푸른나물 데쳐 새파랗게 고명 올리고 양념장 맛나게 하면 별 반찬 없어도 한 끼 식사대용으론 너끈한데 해묵은 장아찌를 겸하면 별미 중의 별미

    

냉면과 콩국수에 밀리고 기계면에 명성 주고 어쩌다가 비오는 날 입이 궁금해지면 밀어서 해 먹는데 햇볕 구경 못하고 뒷방 늙은이 된 안반 홍두깨가 궁뎅이 들썩들썩이며 호들갑 떨어 솜씨 자랑한 면발

   

골기와 타고 내리는 낙숫물보다 가늘다

 

- 『양동 물봉골 이야기』, 도서출판 청어, 2014.

 

   * 석계 고택의 장계향 선생이 <음식디미방>(1670년경)으로 주목받고 있다. 안동 장씨로 재령 이씨에게 시집가서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데다, 최초의 한글 요리서를 써서 예전의 요리 문화를 되살리고 계승하는 족적을 남겼다.

   양동마을 무첨당의 종부이기도 한 신순임 시인은 평산 신씨로 여강 이씨에게 시집와 마을의 제사, 음식, 식생까지 다양한 문화와 풍속을 시로 버무려냈다는 점에서 장계향 선생의 향기가 난다.

   건진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반죽하고 홍두깨로 빚어서 “찬물에 헹구어”건져낸 국수다. 비가 와서 좋고 비가 그쳐서 좋고, 아무려나 건진국수 오는 날, “궁뎅이 들썩들썩”할 장본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