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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이 / 서하

송충이 / 서하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솔잎 하나씩 주더니 눈 감으래요. - 솔잎은 높은 데서 살아 사람의 속내를 잘 들다 본다나 나쁜 사람 손에서는 점점 길어지는 성질이 있다 솔잎 쥔 손에서 땀이 나 축축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나쁜 사람은 되기 싫었어요 눈 없는 엄지와 검지를 벌려 조금 뜯어냈지요 - 너거들이 솔잎 한 잎 쥐고 눈을 감은 이유가 궁금하제 가뭄에 말라 버린 강변처럼 쉰여덟 명 목소리가 다섯 명 목소리보다 작았어요 - 종식이 아부지가 미국 갔을 때 사 온 미제 연필을 일가뿟단다 미제라는 말에 솔잎을 조금 더 잘랐지요, 수업 마치는 종소리 댕댕댕 솔잎 길이를 일일이 다 잰 선생님 - 4센찌 안 되는 천길이랑 정례는 나와서 꿇어앉아 손 들어라 왜요, 실망은 걸핏하면 만만한 게 함..

감상글(시) 2026.09.19

<에세이> 숲을 거닐다

김인자, 『숲을 거닐다』, 푸른영토, 2024. - 김인자 시인은 걷는 사람이기도 하고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세계 곳곳을 다녀온 후로는 대관령 숲속을 주로 걷는다. 걸으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쓰는 일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숲을 걷는 것이 자기와의 약속을 따르는 행위라고 말하면서도, “지금 몸으로 하는 작은 실천이 백번 옳다”고 말하는 시인은 여느 산책자보다 훨씬 다양한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시인은 “누구를 만나든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가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그다음은 새로운 문을 여는 의식이 기다린다”고 믿고 있다. 시인이 소개하는 숲의 사계나 그곳에 머물며 경험하고 나누는 일들도 늘 새롭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다가 놓치기 아까운 일이 생기면, 바깥에 있다가도 얼른 쓰고 싶은 마..

감상글(책) 2026.09.15

울 할매 / 사평(이상욱)

울 할매 / 사평(이상욱) 오직 한 사람에게만 생을 맡긴 수수 빗자루세상 떠날 때 도깨비불이 된단다 부엌과 논밭 자락을 오가며산등에서 바라보던 세상마을 밖으로 나가 본 적 없었다 결이 마르자 말부터 숨어버리고방바닥으로 가라앉아 십수 년안방 그림자 속에서 삭아가던 수수 빗자루 닫힌 문이 열리고끊어진 기다림이 마당에서 대문까지 백열등을 켠다 도깨비불 하나훨훨,어귀를 떠나 별빛을 쫓는다 -『새벽 같은 걸음』, 우리시 움, 2026. 감상 – 시인에겐 할머니는 각별한 존재였나 보다. 「할머니 맛」에서 할머니의 쇠고깃국을 잊지 못하더니 「대보름달의 비밀」에선 보름달의 운행마저 할머니 운전 솜씨로 여긴다. 「석류」에선 벌어진 석류 열매를 마치 손주를 위해 쌈짓돈 꺼내는 모습에 빗댄다. 투정 한마디 없던 입할매가..

감상글(시) 2026.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