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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할매 / 사평(이상욱)

울 할매 / 사평(이상욱) 오직 한 사람에게만 생을 맡긴 수수 빗자루세상 떠날 때 도깨비불이 된단다 부엌과 논밭 자락을 오가며산등에서 바라보던 세상마을 밖으로 나가 본 적 없었다 결이 마르자 말부터 숨어버리고방바닥으로 가라앉아 십수 년안방 그림자 속에서 삭아가던 수수 빗자루 닫힌 문이 열리고끊어진 기다림이 마당에서 대문까지 백열등을 켠다 도깨비불 하나훨훨,어귀를 떠나 별빛을 쫓는다 -『새벽 같은 걸음』, 우리시 움, 2026. 감상 – 시인에겐 할머니는 각별한 존재였나 보다. 「할머니 맛」에서 할머니의 쇠고깃국을 잊지 못하더니 「대보름달의 비밀」에선 보름달의 운행마저 할머니 운전 솜씨로 여긴다. 「석류」에선 벌어진 석류 열매를 마치 손주를 위해 쌈짓돈 꺼내는 모습에 빗댄다. 투정 한마디 없던 입할매가..

감상글(시) 2026.09.08

멧돼지를 부린 날 / 손인선

멧돼지를 부린 날 / 손인선 고사리밭 한가운데멧돼지가 내려와 파헤치고 뒹군커다란 흔적 겁먹은 고사리파랗게 질려 고개를 푹 숙였겠지울타리 대나무도 파랗게 질려사그락사그락 도움을 구했을 테지 그중 용감한고사리 씨앗 몇과 진드기 몇은멧돼지 등에 올라타고산으로 가겠지 커다란 멧돼지가바람처럼 달릴 때햇볕 잘 드는 양지쪽에폴짝 뛰어내렸을 테지 죽다 살아났다고바짝 올라붙은 가슴을쓸어내렸을 테지 친구들에겐야생 멧돼지를 부리며 왔다고허풍 조금 보태서자랑삼아 말할 테지 -『멧돼지를 부린 날』(손인선 시, 장은희 그림), 청개구리, 2025. 감상 – “엄마는/ 맹자 엄마 흉내 내는데/ 나는/ 맹자 흉내 내고 살아야 하나?/ 나답게 살아야 하나?(「나의 고민 - 맹모삼천」 중) 좋게 보면, 고민이 거의 어릴 적 맹자 수준..

감상글(시) 2026.09.03

들이치는 폭설 / 윤창도

들이치는 폭설 / 윤창도 산 정상에 올랐을 때부터 쏟아붓는충만한 진눈깨비벌려 놓은 계절의 끝을 여며 닫으려는지산골짜기 깊게 팬 주름을 덧칠하며 덮고 있다휘몰아치며 자지러지는, 겹겹이 치는 하늘 장막떠나온 산길되돌아가자니 너무 멀리 와 버려서 걱정 태산길하염없이, 하염없이 덤벼드는 무심의 눈발도깨비바늘처럼 착착 몸에 달라붙는다고함 내질러도 켜켜로 쳐 놓은 빗장 열지 못할 공포시야를 점점 좁혀 오고 있다 빽빽이 우거진 눈보라산길 끊어지기 전에 하산해야 한다속눈썹 젖어 오는데, 아이젠도 없이급작스레 하늘 그물에 걸려든 망막한 마음준비 덜 된 노후와 닮은 첩첩의 두려움서늘한 무늬가 쳐져 있다 진눈깨비는 어둠을 몰고 저녁을 훔치러 오고 있다 -『물의 얼룩이 올챙이라니』, 시산맥, 2025. 감상 – 갑작스런 ..

감상글(시) 2026.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