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54

반곡지에서

반곡지에서 / 이동훈 밤나무에 옷을 걸어두고 원효를 낳았다는 터, 제석사를 삼각형 꼭지에 두면 변의 끝점에 설총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반룡사가 있고 맞은편 끝점에 원효의 본가 터, 초개사가 있다. 그 초개사 가는 길에 반곡지* 있으니 어쩌면 원효가 여기 앉아 세속의 사랑과 인연에 도리머리하다가 떠났을 테고 아버지 흔적을 찾아온 설총이 더워진 가슴을 산바람에 식힌 후에야 일어섰을 테다. 원효와 설총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그 자리에 왕버들이 드레드레 앉아 있다. 뿌리에 가까운 밑동은 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틀려서 주름이 깊다. 추위로 깡깡 얼어붙은 날에도 가물어 바싹 말라붙은 날에도 뿌리 끝, 저 아래의 물기를 악착같이 끌어당긴 그간의 고투가 몸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도 바로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