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61

퍼펙트 데이즈

퍼펙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 2024)  주변이 늘 평화롭기를 빌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않고, 당신과 나도 평화롭지 않을 때가 많은 줄 안다. 어제만 해도 좋은 일도 있었고, 걱정스런 일도 있었다. 좋은 일도 계속 좋을 리 없고, 걱정스런 일도 매양 한가지는 아닌 줄 안다. 어제는 정월대보름이기도 했다. 달님께 소원 비는 것도 잊고, 닭똥집 앞에 두고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았다.   화장실 청소원인 주인공 남자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있다. 일뿐만 아니라 출퇴근 시간 음악 듣기, 단풍나무 화분에 물 주기, 자신이 점찍은 나무우듬지 사진 찍기, 자기 전에 책 읽기 등 남자가 보여주는 나름의 취미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일이든 취미든 반복이긴 하되 그 안에도 변화가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

감상글(영화) 2025.02.13

<파묘>

영화 (장재현 감독, 2024))를 봤다.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는 나라무당이 친일파 무덤 밑에 침략전쟁 영웅의 관을 함께 쓰고, 우연찮게 이 땅의 민간 무속인들(무당, 박수무당, 지관, 장의사)이 그 의도를 꿰뚫고 독립군처럼 저항하는 이야기다. 좌파 영화란 소문을 듣고 보았더니 이런 우파 영화가 없다. 민족적인 시각이 나쁠 건 없지만 나라와 이념을 떠나서 전쟁으로 고통받았던 현실에 대한 묘사가 있었으면 좌파 영화로 불러도 좋았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시종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풍수와 묏자리를 보는 장면, 무당굿 장면 등이 어울려 민속학적인 공부도 제법 된다. 집에 와서, 사진집 (열화당, 2017)을 펴본다. 김수남 작가는 굿 장면을 주로 찍어서 사진박수로 불리기도 했던 인물인데, 생전에 방송에서..

감상글(영화) 2024.03.03

나의 올드 오크

독립영화관 오오 극장에서 전번에 (아키 카우리스마키, 2023)에 밀려 못 봤던 를 봤다. 올드 오크는 영국 폐광촌 마을의 술집 이름이다. 대개 가난한 노동자들이 주거하는 지역이다. 나라에서 받아들인 난민들이 이곳에 많이 들어오면서 갈등상황이 연이어 불거진다. 올드 오크 마을에 이전부터 있었던 주민들은 난민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부류들이 많다. 동네가 지저분한 곳이 되고 있다는 생각,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들은 몹시 괴로운 심정이다. 또 일부긴 하지만 난민들의 상황을 걱정하고 이들의 적응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한 술집 그 이상의 동네 아지트 역할을 해오던 올드 오크의 주인 남자는 이 공간을 더 크게 개방해서 난민들과 이를 돕는 주민들이 밥 한 끼 나누는 회합의 장소로 기꺼이 ..

감상글(영화) 2024.01.28

사랑은 낙엽을 타고

켄 로치 감독이 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독립영화 상영관인 오오 극장(대구 만경관과 곽병원 사이에 위치)을 찾았다. 혹시나 영화 상영 중에 기침이 나올까 봐 기침약 먹고 기침약 비스무리한 것도 찾아서 입에 털어넣고 목캔디까지 챙겨서 갔다. 그런데 가서 본 영화는 대신 다. 좋아하는 걸 아끼고 싶어서 라고 해두자. 는 핀란드 출신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작품이다. 영국 출신 켄 로치 감독처럼 주류보다는 비주류 특히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많이 만들어온 것 같다. 영화 속 남자와 여자도 일용직 노동자로 고용이 불안한 상태고 실제 해고와 재취업을 반복한다. 그런 중에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남자는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어렵게 금주를 결심한다. 서사나 감정이 과하지 않으면서 부족..

감상글(영화) 2024.01.28

카우보이의 노래

, 코엔 형제(에단 코엔 /조엘 코엔) 감독, 2018. 여섯 편의 중단편이 실린 책 한 권의 표지 장식 그림은 반쯤 살고 반쯤 죽은 듯한 고목이다. 책 제목은 『The Ballad of Buster Scruggs』다. 이 책을 읽어 주는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전개한다. 영화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고 『The Ballad of Buster Scruggs』의 목차 하나하나가 영화 소제목이 되는 식이다. 목차를 옮겨 적는다. 1. The Ballad of Buster Scruggs 버스터 스크럭스(카우보이 이름)의 노래 2. Near Algodones 알고도네스 인근 3. Meal Ticket 밥줄 4. All Gold Canyon 금빛 협곡 5. The Gal Who Got R..

감상글(영화) 2023.07.17

노매드랜드

노매드랜드 / 클로이 자오 감독 , 펀이란 여성. 선하고 자유로운 기질의 소유자이지만 정작 자신은 직장과 남편이 있는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산다. 그러다가 직장 폐쇄와 남편의 죽음이 가져다 준 시간. 펀은 상실감을 겪으면서도 바깥공기를 찾아서 떠나는 시도를 한다. 노매드(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사는 사람)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정보를 얻으며 자신도 더 이상 일정한 주거지를 고집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노매드의 삶이라고 해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다. 차의 기름 값이 있어야 하고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한다. 오래된 차가 서기라도 하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펀은 다시 일터를 얻는다. 펀에게 주어진 일거리는 대개 시간제로 궂은일이 대부분이다. 펀은 생활을 위해, 또 ..

감상글(영화) 2021.04.19

카일라스 가는 길

카일라스 가는 길 / 정형민 감독 (2020) 여든 중반의 어머니와 오십이 된 아들이 먼 나라까지 여행을 함께 떠났다. 어머니는 이국의 경치에 감격하기도 하고 언어의 벽이 무색하게끔 그곳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도 한다. 장시간 차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수시로 몸을 푸는 운동을 시범 보이는 중에도 카메라를 신경 쓰는 노련미를 보이기도 한다. 어머니는 노트에 여행의 기록을 남기는 데 열심이고, 감독인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영상에 담는 것을 즐긴다.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여행 자체도 흥미를 주지만 얼핏 별나 보이는 모자간의 이야기가 별나지 않게 펼쳐지는 것도 이 영화의 재밋거리다. 티베트를 경유하여 아프가니스탄 방면의 파미르를 넘어가는 대목에서 어머니는 처음 약한 모습을 보인다. 낭떠러지를 옆..

감상글(영화) 202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