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손종남 쌤
신의주
- 丹東에서 / 신경림
낮은 지붕들이 처마를 맞댄
골목으로 들어가면 대폿집이 보일 거야
판자문을 밀고 들어서면 자욱한 담배 연기
돼지고기가 타고 두부찌개가 끓고
어디서 본 듯한 깊은 주름들
귀에 익은 웃음소리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겠지
오래간만이라고 왜 이제서 왔느냐고
다가와 잡은 손들도 있을 거야
나는 울지 않을 거야
마디마다 기름때가 낀
못 박힌 거친 손들을 잡더라도
-『뿔』, 창비, 2002.
* 단둥(丹東)은 압록강 건너 신의주를 지척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에서 곱단이가 시집 간 곳이다. 단둥에 와서 만득 씨는 눈치 없이 아내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만득 씨도 그 아내도, 어쩌면 건너편에 살고 있을지 모를 곱단이도 제각각 조금씩 다른 이유로 서러워했을 것이지만 분단의 아픔을 나누어 가진 건 매한가지다.
시인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특별한 연고가 있든 없든 어느 때고 지나거나 들릴 수 있고, 그곳의 풍토나 인심에 몹시 끌리기도 할 것을, 눈앞에 두고 다가갈 수 없다니 화가 나기도 하고 그 이상으로 슬프기도 할 것이다.
신의주 어느 대폿집에 그곳 사람들의 정서가 묻은 “깊은 주름”도, “웃음소리”도, “거친 손”도 하나같이 반가울 것이다. 누군 생전 처음이라서 감격하고, 또 다른 누군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눈물 바람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울지 않을 거야” 외지만 시인은 원 없이 울고 싶은 마음이다. 『시인을 찾아서』에서 소개했던 박용래 시인과의 첫 만남처럼, 두 손을 잡고 눈시울을 적시며 권커니 잣거니 하고 싶은, 그렇게 술도 푸고 마음도 풀어야 할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동시에, 영영 그러지 못할 것 같은 사정에 울고 싶은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쯤, 단둥이 아니라 신의주에 직접 가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백석 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 술과 돼지고기와 두부찌개 맛은 어떨지 냠냠거릴 수 있을까. 1927년, 대륙횡단 기차표를 끊고 나혜석이 갔던 길(중부일보 2017.6.26. 김창원 교수 글 참조)을 이제나저제나 갈 수 있을까.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