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진, '용호농장의 풍경'
유승훈, 『부산은 넓다』,(글항아리, 2017) & 손민수, 『산복도로 이바구』(인디페이퍼, 2017)
- 부산 답사를 앞두고 부산에 관한 책 두 권을 골랐다. 『부산은 넓다』는 기장군에서 5-7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축제인 동해안 별신굿에 대한 전문적 소개도 있지만 인문학의 바다에서 잡아올린 부산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부산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돕는 글이다.
피란 시절 급격한 변화를 보인 부산인 만큼, 피난 예술인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다방 문화, 이산가족이 식구의 행방을 찾던 영도다리, 함흥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부산 밀면 등에 대한 소개가 눈에 띈다. 함흥식 냉면이 감자나 고구마 전분을 주로 이용했다면 부산 밀면은 여기에 구호품으로 들어온 밀가루의 비중을 높인 것으로 보면 된다.
한때 섬이었던 영도는 원래 명마의 산지로 절영도(絶影島)로 불렸다고 한다. 말이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달린다는 의미다. 또 영도는 ‘영도 할매’ 신앙이 강한 곳이다. 영도 밖으로 이사를 나갈 땐, 영도 할매의 눈치를 봐서 밤에 몰래 빠져나가기도 했나 보다. 저자는 신선동 아씨제당 전설에서 부산과 영도의 역사를 읽어내려고도 한다. 탐라국 여왕이 최영 장군을 사모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원한을 품고 말에게 해코지했다는 것인데, 그 원한을 풀 수 있도록 제를 올린 게 계기란다. 제주 해녀들이 영도까지 진출해 이곳에 뿌리를 내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부산이 해안을 따라 산이 이어지는 지형이다 보니, 피난민들이나 일거리를 찾아서 온 사람들이 항구를 떠나지 못하고 산비탈에 판잣집을 지으며 산꼭대기까지 마을을 이룬다. 그러던 것이 주택 개량과 재개발을 거치면서 산비탈을 빼곡 채운 현재의 주거지로 굳어져서 부산의 얼굴이 된 것이다. 저자는 영화 ‘1번가의 기적’(윤제균 감독)을 소개하며 연산동 물만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산동네 생활에서는 거의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못했다. 비탈진 산동네에서 가파른 삶의 고통을 이겨낸 것이 기적이라면 모를까, 산동네 주민들에게는 삶의 기적보다는 일상을 억압하는 가난의 피로가 계속되었다”며 산동네를 낭만적으로 이해하려는 시각과 거리를 둔다. 아미동의 비석마을은 일본인 공동묘지의 반석 위에 집을 그대로 짓기도 했다고 하니, 귀신보다 삶이 더 무서웠던 것일 테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 초량동 이바구길에 대한 안내는 『산복도로 이바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답사를 다녀왔던 이바구길 이야기만 따라가 보자.
부산역에 내렸다면, 바로 맞은편 도로로 건너와 초량초등학교 방면으로 걸으면 된다. 한쪽에 초량전통시장이 보인다. 저자는 이미 많이 알려진 영도 삼진어묵도 좋지만 초량시장 안의 수제 어묵도 먹어보기를 권한다.
초량초등학교는 이경규, 나훈아, 박칼린 등의 연예인이 이곳을 다녔다고 벽에 광고해 두었다. 시장 풍경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필름에 담는 걸로 잘 알려진 최민식 작가의 사진도 보인다. 책에 인용된 사진 한 장엔 “나의 사진적 공간은 가난하고 낮은 밑바닥의 현실이다. 분위기나 묘사가 대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영위하는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라는 고인의 글이 찍혀 있기도 하다. 일관되게 소외된 사람 편에 섰던 김정한 소설가도 겹쳐 생각나는 대목이다. 다음 답사 기회가 있으면 최민식 갤러리(아미 문화학습관 지하)를 우선적으로 생각해 봐야겠다.
168계단까지 이르면 우물이 하나 있고 그 위로 경사가 만만찮은 것을 보게 된다. 예전엔 이 우물물을 긷기 위해 저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와 아슬아슬 올라가는 풍경이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모노레일이 있어 편하게 오를 수 있다. 계단 끝에 산복도로를 만나는 지점이 김민부 시인 전망대다. 시인 역시 산복도로를 낀 수정동에서 태어났지만 초량동 이곳은 애인을 만나러 자주 드나들던 곳이라 한다. 다음에 여기 들릴 때는 의문의 화재로 요절한 시인의 시를 챙겨오면 좋겠다. 저자는 “오늘도 168계단은 누군가에게는 현재 진행형의 삶이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계속해서 이어질, 부산 사람들의 위대한 삶을 보여주는 부산 사람들의 위대한 유산이다”라고 이바구를 남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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