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밤중에 소리를 읽는다 / 김황흠

톰소여와허크 2018. 8. 8. 14:31





밤중에 소리를 읽는다 / 김황흠

 

 

매화 진 지 오래되었는데 뒤란은

아직도 겨울이 흘린 심술로 적색경보다

뭔가 펄럭이고 냅다 후려치다가

캄캄한 공간을 흥건하게 적시는 소리가

살아서 꿈틀거린다

어깃장이 맞지 않아 덜렁대는

너와 나 사이도

심상치 않은 말투로 콕콕 찌르는 동안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벽 틈으로 새어든다

땜질은 잠깐의 침묵

그때 그때 눈 감고 만 것이

어둠 속에서 격렬한 소리로 살아 몸부림치지만

그래도, 담장 밑 민들레가 홀씨를 날리고

매화나무 꽃 진 자리도

깊은 잠 뒤척이는 소쩍새 소리로

매실이 탱탱하게 익어간다

 

- 건너가는 시간, 푸른세상, 2018.

 

 

* 봄이 오기야 오지만 쉽게 오지는 않는다. 햇살 기운이 더해지고 땅이 녹아서 풀리는가 싶다가도 눈바람이 다시 불고 땅을 도로 얼어붙게 만든다. 겨울의 끝에 매화가 피지만, 한파로 인해 몽우리도 내지 못하고 동상에 걸리는 꽃가지도 있게 마련이다. 한바탕 소란 끝에 소소리바람은 지나갈 테고 매화도 송이송이 벌어질 것이다.

사람 사는 일도 비슷한 면이 있는 듯하다. 가까운 사이에 격렬한 소리를 낼 때가 있다. 애초에 어깃장이 맞지 않아서 그렇다는데, 이때 어깃장은 문짝이 뒤틀리지 않도록 대각선으로 잡아주는 것을 말한다. 어깃장이 구실을 못할 정도로 틈이 벌어진 상황도 예견된다. 땜질로 임시 처방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그때 그때 눈 감고 만 것이상황을 악화시킨 면이 있다고도 여긴다.

시인이 시적 화자인 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런 고백은 진솔하기고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고백의 주체도 또 그걸 듣는 청자 입장도 약간의 여유를 갖는 느낌이다. 시 제목 밤중에 소리를 읽는다에서 보듯 읽으려는 태도에 믿음이 생겨서 그런 것이기도 하겠다. 시인은 소리를 만들고 소리에 매몰된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상황을 응시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침묵을 고민한 침묵 즉 이전과 다른 침묵, 이전과 다른 대화를 시도하며 더 나은 관계를 모색하는 일은 결국, 남을 읽고, 상황을 읽고, 그런 상황에 빠져있는 를 읽는 여유로부터 시작되는 거다.

소란 끝에 그쪽에 다가간 이야기, 이쪽에 와 닿은 이야기로 고요의 시간을 겪으며 성숙해지는 시간을 생각한다. 뒤란의 매화는 늦게라도 필 것이고 매실은 보란 듯이 익어갈 것이다.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에 대한 단상 / 김완  (0) 2018.08.21
나도 명품을 먹는다 / 박봉준  (0) 2018.08.12
창가의 꽃기린 / 정이랑  (0) 2018.08.05
그릇 / 박연준  (0) 2018.08.04
책장을 정리하며 / 임영석  (0) 2018.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