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속의 프로이트 / 고희림
그는 늘 말한다
정신과 의사 같은 말, 마음을 비우라는 말
당신 곁엔 내가 없고 내 곁엔 당신이 없다는 말
혁명이니 희망이란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말
말이란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면 나이가 불쌍해진다
상처가 된 말들은 예의가 없다
백로(白露)가 마신 화주(火酒) 같다
그는 그런 빛 같은 말을
먼지처럼 사는 나에게 마구 쏜다
아아 먼지 속의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분석받고 있는 사람을
여자로 가정하기 좋아했다지
나는 너에게, 빛에게
모든 의무에 함량된 내 피에게, 프로이트에게
분석받고 있다
인연을 끊지 못하여 내부, 내부를
먼지로 만들어가는 여자
우리가 사랑에 관해서 말할 때
정말로 그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가?*
*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랑의 역사」에서
-『평화의 속도』, 시와반시, 2003.
감상 : 프로이트는 꿈을 분석하며 꿈은 억압된 소망의 위장된 충족이라고 했다. 그 소망이란 게 스스로 인정하기 힘든 경우 꿈의 왜곡이 생긴다. 프로이트는 그걸 감안해서 꿈을 분석하고 꿈의 배경이나 심리적 기제를 파악하는 데 철저했지만, 일반인은 먼지로 덮인 불투명한 내면만 응시할 뿐 명료한 해석을 갖는 게 어렵겠다.
꿈의 해석에 프로이드가 간여했다면, 위 시에선 시인의 마음에 관해서 ‘그’가 부지런히 분석하고 처방하는 모습이다. 시인은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혁명과 희망을 예전처럼 품지 못하는 시대에 낙담하기도 한다. “백로(白鷺)가 마신 화주(火酒)”란 표현이 재미나지만 사실, 여린 존재가 소줏불로 속을 태우는 모습이고. 이런 속 태움은 “상처가 된 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처의 말을 “빛 같은 말”로 상쇄시키면 좋겠지만 삶이 그처럼 간명할 리가 있겠는가. 상처의 깊이만큼 내부의 먼지 더께는 더 쌓이고 삶도 그만큼 불투명해진다.
시의 끝 연에 인용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말은 시인의 내면에서 분출해 나온 질문이다. 하고많은 질문 중에 위 질문을 선택한 내면 풍경을 분석하고 싶다면 프로이트부터 읽는 게 순서일 것이다. 시간을 아끼려면 「공단분식식당에서」 찬 막걸리를 받아두고 시인의 육성을 직접 듣는 방법이 있어 보인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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