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 이설주
봄비가 주렴을 친
장지문을 열면
푸성귀같이 말라버린
잊었던 옛날이
우산을 들고
나그네처럼 걸어온다
겨우내
그리워도 밤이 남은
실꾸리 풀어내듯 긴긴
다 못한 이야기들
꿈을 꾸다 떠난
어둠에 깃든 깊은 사모야
더는 사를 수 없는 적막일레
은빛 눈물로
가락지를 끼우고
소복을 한 시름
청상으로 오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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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꽃』, 현대문학, 1989.
감상: 대구 경북의 예술가 생애를 조명한 백기만의 『씨 뿌린 사람들』(1959)에서 이설주(1908-2001)는 이상화 시인의 전기를 쓴 바 있다. 이설주 시인은 이상화보다 일곱 살 아래지만, 북성로와 수창초등학교 근처의 같은 마을에서 자랐으며 백기만, 이장희 등 상화의 생가를 출입하는 선배들을 두루 알고 지냈다. 백기만 시인과는 대구고보 선후배 사이기도 했다.
이설주는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높게 평가했고, 이상화는 1937년경 자신의 친형인 이상정 장군을 찾아 상해로 가는 길에, 대련에 머물고 있는 이설주를 찾아 삼사일 함께 다니며 술을 마시고 문학을 얘기할 정도로 스스럼없이 대했다. 1952년 상화와 고월 이장희의 이름을 딴 상고예술학원이 개원하자 마해송 뒤를 이어 얼마간 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상화, 이장희, 백기만이 생전에 시집을 엮지 못한 반면에 이설주는 스물여 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중에『달맞이꽃』은 이설주 시인이 여든이 넘어서 묶은 시집인데 사랑과 그리움과 회한의 정조가 짙게 나타나 있다. 「서시」엔, 오십 중반에 만난 이십 대 제자에 대한 연정을 슬쩍 내비치고 있으나 이후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묘사가 없는 걸로 보아, 자신 안의 특별한 감정을 최대한 자아내기 위한 설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장희 시인에게 에이코, 이상화 시인에게 손필연과 유보화 같은 여성도 시인과의 인연이나 친소 관계와는 무관하게 시의 장면과 표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설주의 「봄비」는 퍽 다감하게 읽힌다. 자신의 노구처럼 말라버린 푸성귀를 봄비가 적실 때 시인은 “잊었던 옛날”의 “다 못한 이야기들”에 생각이 미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간절하되 “더는 사를 수 없는 적막”이 당면 현실이다.
“소복을 한 시름”이란 표현에서 그가 쓴 이상화 전기의 한 구절이 겹쳐 생각난다. 이상화 시비 제막식 때 이설주도 알 만한, 소복 입은 여성이 멀리서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 사연을 다 밝히거나 꾸미면 전기나 소설이 되겠지만 그 정서만 취해서 여운을 주고, 공감을 자아내는 쪽이라면 시에 가까워질 것이다.
시인은 청상(靑孀)으로 오는 「봄비」에 흠뻑 젖는다. 가락지로 맹세한 약속은 시간 속에 헐거워지거나 빠져나가거나 했을 것이다. 그 이후의 시간은 각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남는다. 그런 중에도 그리움을 어쩌지 못하고 “잔잔한 젊음의 강에 / 돛을 풀어놓는”게 「여생」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1948년 달성공원에 이상화 시비를 세울 때도, 1991년 두류공원에 백기만 시비를 세울 때도 자리를 지켰던 이설주 자신은 2002년 월광수변공원에 시비로 남아 있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