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 이승욱
O 별명은 까마귀
바둑을 잘 두었다.
D는 철학자
근엄한 두 개의 안경알 속이 늘 불안했다.
I는 가난한 휴머니스트
봄에 핀 무꽃 같은 그의 삶에는 늘
눈물이 감돌았다. 나는 몽상가
절망을 사르던 반란의 불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저가 싫어서
저와는 다른 세상을 좇아 달아났다.
부도덕한 시의 이름으로 합쳤던
위대한 도당들,
소주가 헐한 포장집에서
그들과 나는 낮술에 취하고
씌어지지 않는 시는 없다고 하였다.
씌어진 시들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남은 심심한 날
우리는 모두 어중간한 시를 썼다.
이제 그 지겨운 추억의 자리에 남은 사람은 없다.
이제 그 두려운 시를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지금도 텃밭에 무꽃은 피고
지금도 교정의 분수는 물보라를 끓이고
지금도 낮술에 취한 사내들이
역사를 이어가지만, 비정했던
추억보다도, 비정했던
그날의 그 시들보다도, 비정한 것은, 아아
산다는 것이다. 우러러 가슴 저린 먼 하늘을 보면서
오늘은 쉬이 술을 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 『늙은 퇴폐』, 민음사, 1993.
감상 – 김광규 시인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는 4.19세대의 젊은이들이 그로부터 18년을 지나와서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던 젊은 날의 벗들이 세상살이를 겪으며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는 상황으로 몰려온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환기하는 시다.
이승욱 시인의 「친구들」은 김광규의 시에서 현실을 조금 더 감추고, 노래를 좀 더 부각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김광규의 ‘노래’는 사회에 대해 표출하는 개인 목소리 성격이 강한 반면, 이승욱에 와서는 그런 노래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시’가 ‘노래’를 대신하고 있다. 한때는 시를 품고, 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내던 친구들이 세월을 격하여 장년이 되고부터는 시를 잃고 산다는 내용이다. 이승욱 시에서 재밌는 것은 바둑 고수, 철학자, 휴머니스트 같이, 비교적 인문학적 영향권에서 자란 친구들이 하나둘 시를 잃어 가는 중에 정작 몽상가로 표현된 자신만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혹여 “절망을 사르던 반란의 불”이 약화되거나 꺼졌다손 치더라도 몽상가는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헛된 꿈일지라도 그 꿈을 잃지 않는 한 불씨는 살아날 테니, 그 불씨가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인 셈이다.
김광규 시인의 이십대는 4.19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승욱 시인의 이십대는 긴급조치 선포가 9호까지 이어지던 시대다. 토론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쓰고, 시대를 아파하던 젊은 날의 마음은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심지어 술도 시들해진다. 시대가 달라진 탓도 있고, 자신이 달라진 탓도 있다. 김광규는 늪으로 발을 옮기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포즈라도 취했고, 이승욱은 “산다는 것”의 비정함이 모든 걸 바꾸어놓은 것처럼 말했다.
시는 공기처럼 있다고도 하는데 공기의 소중함은 그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한다. 만약, 시가 삶만큼 절실한 것인지 아닌지를 물었을 때 답이 궁하다면 시인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아마도 시가 삶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런 중에 “씌어진 시들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결기 있게 말하는 시대가 오히려 시가 들끓던 시절임을 생각하게 된다. 시의 양심이 있다면 산다는 것의 비정함이란 말 앞에 시가 견딜 수 있도록 삶을 고민하고, 시를 고민하는 열렬한 자세를 갖는 것 말고 또 뭐가 있겠는가 싶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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