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 득량, 어디에도 없는

톰소여와허크 2023. 6. 25. 20:45

양승언, 득량, 어디에도 없는, 글을낳는집, 2023.

 

 

- 작가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평생 화두로 품고 지낸다. 근래 2년여를 머물며 이곳이야말로 최적의 고장이라고 얘기하고 책으로 엮게 된 곳이 바로 남도의 장흥, 보성, 고흥으로 이어지는 득량이다. 작가가 인연이 되어 머문 곳은 보성 일림산 정씨고택과 삼의당이다.

보성과 득량만에 대한 작가의 사랑은 지극하다. “보성 지역을 간략하면 동벌서포라고 할 수 있다. 동쪽에 벌교가 있고 서쪽에 율포가 있다는 뜻이다...또 다른 표현으로 옮기자면 동꼬서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동쪽 벌교는 꼬막이, 서쪽 율포는 낙지가 대표적 먹거리라는 의미다”. 해산천야(海山天野) , 바다와 산과 들판과 하늘을 고루 갖춘 천혜의 땅은 대한민국 남도, 득량만 일대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부언한다.

지역 홍보인이 되어, 대한다원 녹차밭과 율포바다를 보성의 상징으로 꼽으며 해수녹차탕과 회천수산물위판장에도 들러 볼 것을 권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게 여겨지는 공간은 바로 작가가 신세지고 있는 삼의당이다. 삼의당이 어떤 공간인지 작가는 삼의당(三宜堂보성 봉강리 정씨고택이란 시를 거듭 써서 공간의 의미를 짚기도 하는데, 풀어쓴 글 또한 깔끔해서 이를 옮겨 적는다.

 

삼의당의 본채는 보성 정씨고택이다. 해방 후 한국현대사의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의 혼란 속에서 남북으로 갈라질 조국의 비극을 막기 위해 몸을 바친 몽양 여운형과 봉강 정해룡. 봉강의 조부가 후손을 가르치고자 본가 뒤 산속에 지은 집이 삼의당이다. 사람이 살지 않아 퇴락해가던 잡초에 덮인 이 집을 발견하고 나는 직감적으로 인연 터라 느꼈고 이 집 주인을 찾다가 뜻하지 않게 보성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삼의당 마루에서 해가 떠오르는 득량만 바다를 바라보면 세상이 이토록 찬란한 영광인가 싶을 정도이다. 마당에는 모과나무, 벚나무, 고로쇠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데 아침마다 모과나무와 벚나무 사이의 일출을 만날 때면 내 가슴에서도 밝은 해가 떠오른다. 삼의당 마루에서 해 뜨는 아침을 맞을 때마다 나는 생이 얼마나 황홀한 기쁨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만 읽고 삼의당을 찾는 것은 실례가 될 것 같다. 봉강 정해룡 일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 더 알고 가야 하는데, 작가는 김민환의 소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난다를 일러준다. “정씨고택에 얽힌 한국 근현대사의 유장한 비극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니, 혹여 근처를 배회하는 것을 지나 고택 마당에 발을 들일 것 같으면 책이 출입 허가증 역할을 해줄 것이다. 정씨고택의 한반도 연못이나 사당의 정해룡 선생 영정 등을 언급하며 작가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마라는 가문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누가 역사적 인물인가를 새로 생각한다. 작가는 양심을 속이지 않고 헛된 것에 딴전 피우지 않는 성실한 사람들을 우선 떠올린다. 바로 득량 땅에서 낙지를 잡고 쪽파나 감자를 기르는 사람들이다. , 서 있는 곳 그대로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낙원임을 알며 흙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말이다라며 질문의 답을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다.

삼의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명봉역이 있다. 광주송정역과 밀양 삼랑진역을 잇은 경전선상의 간이역으로 한때 비둘기호가 정차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작가가 탔던, 보성역에서 명봉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하루 한 번 운행되는 것으로 검색된다. 명봉역엔 이곳 보성 출신 문정희 시인의 시비가 있고 그녀의 명봉역엔 은소금 하얀 햇살 속에 서 있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의 환송을 받던 그날 문정희 시인은 봉황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양승언 작가도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며 벤치에 누웠다가 새벽녘 봉황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보성역까지 걸어오면서 은소금 햇살까지 마주했다고 하니 기대감을 갖고 명봉역에 가도 좋으리라.

 

작가의 득량, 어디에도 없는는 보성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씨고택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순 사건의 희생자 후손으로 아직 상처를 씻지 못한 여자가 있고, 어릴 때 이곳을 떠났다가 삶의 우여곡절과 아픔을 겪으려 낙지잡이 선장으로 돌아온 사내도 있다. 득량은 두 사람을 받아주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게도 해준다.

보성은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는 곳이지만 작가는 홍암나철기념관에서 처음에 제기했던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답을 구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 나철은 대종교의 창시자이고, 대종교는 단군신앙으로 민족의 구심점을 잡으려고 하다가 일제의 탄압을 받은 종교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는 건국이념에서 작가는 어떤 희망을 본 것일까. “시장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지극한 물질주의와 도시집중화로 인한 농어촌의 황폐화, 인구감소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대안의 땅으로서 시작한 남도 이야기 득량만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끝으로, 작가의 시 회천감자마지막 대목이 눈에 남아 옮겨 적는다.

 

(전략) 감자를 줍는 타지 사람들

하늘이 주신 풍요의 땅

곡식이 넘치는 득량만

함께 사는 세상 나눠 먹으라는

회천감자의 뜻

 

(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세이> 방울 슈퍼 이야기  (0) 2023.07.17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0) 2023.07.01
<에세이> 숲에서 한나절  (0) 2023.06.16
<에세이> 흘러간 내 영혼의 먼길  (0) 2023.06.04
<소설> 대성당  (0) 2023.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