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말 / 김경성
갈기가 흔들릴 때마다 약속처럼
나도 흔들린다
물 밖은 위험해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물방울 하나로 누르며
멀리 나가고 싶은 마음마저 내려놓고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갈기를 키우는 말은 암막 커튼을 걷어내고
발굽 아래로 흘러가는 길의 지류를 이마에 붙이는 일이라고
생이가래, 붕어마름, 올챙이솔, 쇠뜨기말, 솔잎가래, 물수세미······
그 사이에서 떼로 자라는 검정말은 달리는 말이 되었다가
물속 말이 되었다가
토슈즈를 신은 왕버드나무도
치마를 한껏 펼치고는 호수 속으로 뛰어 들어가
검은 말을 타기도 하고 검은 물풀이 되기도 하는
가을 한낮
당신은 안녕하신가
안부를 묻는 듯
물고기 떼를 품고 있는 검정말의 갈기가 흔들린다
- 『모란의 저녁』, 시인동네, 2023.
감상 – 검정말과 나사말은 자라풀과의 수생식물이다. 자라풀은 자라 등 모양의 잎이 물 위에 떠서 있는 반면에 검정말과 자라말은 물속에서 잘 자란다. 마디마다 이파리가 돌려나는 검정말과 가늘고 길쭉한 이파리를 가진 나사말이 물살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나사말 쪽이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말의 움직임이나 그때의 갈기 모습에 더 가까울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검정말이 선택된 것은 흑마(黑馬)의 이미지와 겹치는 효과를 놓치기 싫어서 일 것이다.
시인은 식물 검정말에서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걸 표현해 두었다. 하나는 익숙한 공간인 물속의 삶에 안주하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물 밖으로 나서서 멀리 가 보는 일 즉, 모험을 사는 것이다. 양자 사이에 흔들리는 모습 속에 시인은 내남없이 ‘당신’은 어떤가 되묻는 것으로 선택의 고민을 자신과 독자 모두에게 던져준다.
검정말이 물고기 떼를 품고 있다는 말에서 물고기 떼를 자신이 건사해야 살붙이로 볼 여지도 생겨난다. 때로 책임, 때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스스로 속박되는 일도 적잖다. 시인은 흔들리는 중에도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지만 그런 중에도 가 보지 않은 길, 낯선 바람 속에 있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 보인다. 어쩌면 이런 흔들림이 심심한 생을 탄력 있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왕버드나무에 토슈즈를 신기는 발랄한 상상도 지칠 때가 있을 것이고 그럴 때면 다른 선택지를 꿈꾸며 오롯이 설레도 좋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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