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지켜야 하는 것 / 류흔
정조는 지켜야 하는 것이다
궁녀로부터 정조를 지킨
호위무사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점은 나의 신념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니 여러 애인과
상통하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밤에
그러니까 억수로 취한 밤에
어쩌지 못하고 당하던 그 밤에
호위무사 한 명 없는 처지를 한탄하며 꺼이
꺼이 동틀 때까지 나는 울었다
달리아 비누 냄새와 뒤집어진
내복에 관해 추궁받기 전에
다락같은 가마 속으로 숨어들어
광화문에서 화성(華城)까지
정조와 함께 수백 년을 흔들리고 싶었다
나오라!
성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아내여
성문은 절대 열지 않으리
먼 훗날 성이 허물어져
단란했던 돌이 틀어지고
바람에 흩어져 모래가 될지언정
나는 마음의 순결을 피력하리
지켜야 하는 생활과
지켜야 하는 밤과
지켜야 하는 역사를 생각하면 아으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달아실, 2021.
감상 –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화성을 신도시로 조성하려고 했다. 창덕궁에서 광화문을 지나 여러 차례 수원 화성을 방문했으며,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을 맞이해서는 6000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원행을 꾸렸다. 정조는 이때의 행사를 김홍도를 책임자로 해서 ‘원행을묘정리의궤’로 남기게 한다. 그런 정조가 강력한 왕권으로 신권을 능가할 무렵 갑작스레 의문사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다양한 상상력과 소설이 있는 줄 안다.
류흔 시인은 화성 행차의 주인공인 정조(正祖)와 절개나 순결을 지키는 정조(情操)를 병치하고 또 섞어버림으로써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든다. 어찌 보면 장난기 있는 말주변이 혼란을 만든 듯도 하지만 정조와 정조, 둘의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고 수습하는 솜씨 또한 시인의 재능이다. 이를 테면, “광화문에서 화성(華城)까지/ 정조와 함께 수백 년을 흔들리고 싶었다”는 표현이 그렇다. 역사적 상상력에 개인적 처세가 잘 어우러진 시구로 읽힌다.
정조의 유무와, 아내와 애인 사이 일들이 흔히 통속으로 흐를 법하지만 시인은 그 경계에 멈춰 선다. 지켜야 할 생활, 밤, 역사를 다소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는 중에도 시인의 뜻은 얼비친다. 멀거나 가깝거나 오해와 소통의 부재 상황이 안타까울 순 있어도 그냥 웃으며 내 양심과 내 지조와 내 “마음의 순결”을 잃지 않고 사는 일이 소중하지 않겠냐는 생각 말이다.
정조가 ‘원행을묘정리의궤’로 8일 간의 행사를 남겼다면, 순결한 류흔 시인은 애인들을 발표하는 것으로 한 시기의 삶을 정리할 생각이었나 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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