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른 숨결의 사랑 노래 / 윤택수
당신은 저가 싫다십니다
저가 하는 말이며 짓는 웃음이며
하다못해 낮고 고른 숨결까지도
막무가내 자꾸 싫다십니다
저는 몰래 웁니다
저가 우는 줄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저기 아프고
아픈 자리에
연한 꽃망울이 보풀다가 그쳐도
당신도 그 누구도 여태 모릅니다
머지않아 당신은 시집을 가십니다
축하합니다 저는 여기 있으면서
당신이 쌀 이는 뒤란의 우물가에
보일 듯 말 듯한 허드레풀 핍니다
마음 시끄러우면 허드레풀 집니다
저는 당신의 친구입니까
저가 하는 말이며 짓는 웃음이며
하다못해 낮고 고른 숨결까지도
막무가내 자꾸 친구입니까
저는 몰래 웁니다
-『새를 쏘러 숲에 들다』, 아라크네, 2003.
감상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1922년) 했던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떠오르는 시편이다. ‘나’는 그쪽을 사랑하는데 그쪽의 반응이 ‘역겨워’에 가깝다면 거절당하는 마음은 고통스럽고 제삼자가 보더라도 몹시 난처하겠다.
「진달래꽃」의 화자는 「고른 숨결의 사랑 노래」에서 ‘낮고 고른 숨결’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한다. 당신을 사랑해서 연인 관계로 잇고 싶은 소망은 간절한데 당신의 태도는 역겨움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자의 숨결마저 막무가내 자꾸 싫다고 밀어낸다. 친구 그 이상은 나아갈 수 없다는 단호함을 대하는 화자의 마음도 여간 심란해 보이지 않는다.
김소월은 이별의 순간에 자신을 즈려밟고 가라며 진달래꽃을 내놓지만 윤택수는 당신 있는 뒤란의 허드레풀(시에서는 허드렛풀로 표기)로 피겠다며 자신의 고통과 사랑의 지순함을 같이 보여준다. 혹, 보는 시각에 따라선 좀처럼 포기가 되지 않는, 몹쓸 사랑의 뒤끝이라고도 하겠으나 이를 의식했는지 아니면 끝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마음에 지쳤는지 시인은 “마음 시끄러우면 허드레풀 집니다”란 표현으로 슬쩍 물러서는 모습을 연기한다. 한 번이라도 보란 듯이 피지 못하고 알아주는 이 없이 지는 모습은 한없이 쓸쓸한 일일 것이다.
윤택수 시인은 마흔을 채 살지 못하고 죽었다. 용접기사, 원양어선 선원, 잡지 편집자 등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던 시인은 고향인 대전에서 학원 강사로 수업하던 중 쓰러지고 그 후유증으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시인이 결혼을 늦춘 이유가 「고른 숨결의 사랑 노래」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도 든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자조 속에서도 시인은 독자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표현력을 갖고 있었다.
허드레풀은 별로 요긴하지 않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풀이다. 허드렛물, 허드렛소리, 허드렛일, 허드레꾼, 허드레옷은 별로 쓸모없는 것들 중에 그나마 선택되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단어들이다. 허드레풀이 나중에라도 사전에 등재되는 날이 온다면, 그건 아마도 허드레 아닌 알짜배기 윤택수 시인의 공이 될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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