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정생,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 햇빛출판사, 1985.
권정생의 동화가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아이들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비판이 더러 있었나 보다.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제 동화가 어둡다고 말하는 분이 있지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보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전 앞으로도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라고 했고 실제로 권정생의 동화는 쓸쓸하거나 아프거나 슬픈 내용이 많다. 그나마 초기에 쓴 『강아지똥』은 아주 밝은 편에 속한다.
이오덕은 이에 대해 “남들이야 무슨 말을 하든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귀하고 값진 것으로 아끼고 싶습니다.”며 한결같은 지지를 보낸다. 다만, 이오덕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꿩』 같은 작품은 권정생에 대한 비판을 의식했는지 마무리에서만큼은 권정생의 작품에 비해서 한결 밝고 희망적인 모습이 보인다.
새천년을 맞아 내놓은 권정생의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도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동화를 표방했지만 주된 정서는 슬픔이다. 다만, 식물이 주인공일 때는 슬픔의 색채가 옅어지는 듯도 하다. 「어느 시냇가 이웃들」은 강아지풀, 질경이, 할미꽃, 제비꽃, 차돌멩이, 모랫돌 등이 주인공이다. 염소 발에 밟혀 곱추가 된 어린 제비꽃을 할미꽃이 돌보지만 제비꽃은 아이답게 샘도 많고 버릇없는 모습도 보인다. 그때 할미꽃은 어린 제비꽃의 불행은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라며 따끔하게 혼을 낸다.
“누구나 제 몸에 병이 들고 외로울 땐 남을 의지해야 하는 것은 옳은 일이야. 더욱이 어린아이는 말할 나위도 없지. 다독거리며 쓰다듬어 주고, 때로는 병든 아이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바쳐 가며 돕는 이도 있어. 그런데 한 가지 나쁜 것은, 은혜를 받은 사람의 태도가 바르지 못한 것이 탈이거든. 여지껏 남에게 몽땅 의지했던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단 말야. 남의 고통 같은 건 아랑곳없이 자기만 제일인 체하거든.”
이와 같은 할미꽃의 말 뒤엔 버릇없는 아이를 대하는 권정생의 목소리가 숨겨져 있는 듯해서 조금 웃게 된다. 동화 속 제비꽃은 할미꽃의 말을 듣고 반성의 눈물을 보이고, 이처럼 아이들은 이내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며 주위에서 흐뭇한 마음으로 제비꽃을 품어준다.
하지만 사람이 들어간 동화는 아픈 일들이 연이어 생긴다. 「아버지」를 보면, 용복이와 재복이 형제는 할아버지 집에 맡겨져 학교에 다니면서 하교 후에는 산밭 일을 거든다. 형제는 할아버지 할머니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양식 살 돈도 못 보내면서 말 같은 자식새끼만 둘씩 맡겨 놓고, 아유, 지레 죽고 말 거요.”하는 말을 할머니가 수시로 내고, 할아버지도 언성을 높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형제가 기다리는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형편이 나아져서 자기들을 데려가는 날이다. 하지만 현실은 형제의 희망과 반대로 흘러간다. 아버지는 탄광 일을 하다가 몸져눕게 되고, 어머니는 광주리장사라도 하겠다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돈을 꾸는 편지를 보내온다. 형제는 소원을 바꾸어 아버지가 건강하기만 바란다.
「어느 가을날 할머니가 부르는 찬송가」엔 베트남 파병을 나간 삼촌의 귀환을 앞두고 할머니는 아들 만날 생각에 행복감에 젖는다. 삼촌이 좋아하는 감나무 근처엔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고 교회 감사 헌금도 부지런히 한다. 하지만 삼촌 대신 전사 통지서가 먼저 날아온다. 할머니는 전쟁이란 상황 속에서 “모두들 못할 짓을 했지. 이 할미도 나빴어.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 기석이만 보호해 달라 한 것”에 대해서 후회하며 입을 비쭉이며 우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이처럼 권정생 동화는 중간중간 미소와 웃음을 짓게 하는 장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과정과 결말이 내내 어두울 때가 많으니 동화를 읽고 맘이 언짢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적잖이 있겠다. 바로 그 불편함이 필요하다고 권정생은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권정생은 가짜 희망이나 억지 행복을 주워댈 마음이 전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실이 어둡고 슬프다면 이를 속일 수 없다는 게 권정생의 뜻이다. 권정생의 동화는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꼬박꼬박 말하면서 그렇지 않은 현실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담고 있는 게다. 그리고 재미도 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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