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작성 시각 : 2004.05.29 00:22:07
박완서 외, <내 마음 속 사진첩에서 꺼낸 이 한 장의 사진>, 샘터, 2004.
어떠한 메모나 기록으로도 과거를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다. 글을 쓰는 순간, 현실을 왜곡해 버린다. 진실은 열 권의 일기보다 한 장의 사진에 있을 법하다. 사진은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버리는 요술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남긴다는 사진의 매력은 그 현재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픈 인식으로 변하기도 한다.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사진의 배경이 되고 있는 장소, 옷차림과 표정을 차례로 좇으면 과거의 자신에게 무슨 얘기인가를 건넬 수 있을 게다. 어쩌면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전해올지도 모를 일이다.
<내 마음 속->은 스물 일곱 명의 문인들이 사진 한 장을 꺼내들고, 그 사진에 얽힌 추억과 감회를 풀어헤쳐 놓은 글이다. 교복 입은 윤대녕과 윤후명, 세 발 자전거 위에 빛나는 나신을 자랑하는 안도현을 감상할 수 있고, 김용택이 사랑하는 느티나무 한 그루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얼마 안 되는 나의 사진을 뒤적여 보게 된다. 대추나무 아래 마루에서 할매가 손자를 거느리고 앉아 있는 사진을 찾았다. 눈이 오래 머문다. 사촌동생 두 명은 할매에게 기대어 행복하게 웃고 있고, 나의 표정도 꽤나 밝다. 사진기 앞에만 서면 얼굴이 굳어지는 평사시와는 사뭇 다르다. 할매도 웃음을 물고 있는 표정이다. 입매와 눈매가 부드럽고 깊다. 흐뭇하신가 보다. 사진첩의 마지막 페이지는 할매 묘소 앞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들이다. 그 옛날 대추나무 아래에서 마냥 행복했던 날로부터 이십 여 년이 지난 후의 사진들이다.
앞으로 또 이십 여 년이 지나면 나도 사진 속 얼굴이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기억될 만한 사람이면 좋겠다. 우선, 사진 찍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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