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 편지를 읽고 정리하다가 노란 비닐봉투에 담긴 편지지 하나를 우연히 발견했다. 96년 수원 수성여중에서 임시교사로 두어 달 있을 때 받은 편지였다. 그러니 제자에게 받은 첫번째 편지인지도 모르겠다. 잠깐의 인연, 아마 서로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할 게 틀림없는 사이지만, 첫출발을 되새기는 마음에서 편지 내용을 옮겨 적는다.
동훈이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전 2학년 5반 실장 진경이에요.
선생님이 저희 학교에 오신 지도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벌써 가신다고 하니까 정말 섭섭하네요. 제가 섭섭해 하는 건 다음 국어시간부턴 딴 짓을 못하게 돼서가 아니에요.
수업시간에 내용설명도 잘 해주시고, 여러가지 책에 관한 얘기들도 잘해주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떠난다니까 그런 거에요.
그동안 정말 힘드셨죠? 수업시간엔 애들 모두 각자 놀고, 설명을 듣는 애들도 별로 없으니까 가르치고 싶은 마음도 안 생기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큰 인내로 여기까지 참고 견딘 선생님께 죄송하기도 해요. 부디 저희 학교 떠나시면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 더 많이 하시고요. 다음 학교 가셔서도 선생님의 능력 십분 발휘하셔서 열심히 가르치시길 바래요.
이젠 그만 쓸께요. 안녕히 가세요.
저희는 영원히 선생님을 못잊을 거에요.
96.10.22
2-5 안진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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