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스페인 알칼라 데 에나레스, 1547∼1616)
소설가며 극작가며 시인인 세르반테스는 스페인의 대학도시이며 출판 중심지였던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일곱 형제 중 넷째였다. 할아버지는 명성이 높았던 변호사로 집안이 여유가 있었으나 떠돌이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 대에 집안이 가난에 시달렸다. 21세 때 마드리드 시립학교에서 인문학자였던 후안 로뻬스 데 오요스에게 잠시 배운 것 외에는 학교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었다.
22세 때 이탈리아로 건너가 추기경 G. 아쿠아비바의 시중을 들었고 70년에는 나폴리로 가서 동생 로드리고가 있는 부대에 들어가 군인이 되었다. 이듬해 레판토 해전에 참가하였다가 가슴과 팔에 부상을 입었으며, 특히 총상으로 인해 평생 왼쪽 손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후 1575년 에스파냐 해군 총사령관이며 왕제(王弟)인 돈 후안의 표창장을 받고 에스파냐로 귀국하던 도중, 그가 탄 배가 투르크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알제리로 끌려가 그곳에서 5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였다. 그동안 여러 차례 도망치려 했지만 실패하여 결국은 몸값을 지불하고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포로생활을 하면서 영웅심에 불타는 젊은이의 꿈은 사라졌고, 이후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면서 환멸을 경험했는데, 이러한 경험이 훗날 그의 작품세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에스파냐에 돌아온 뒤 그는 문필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다수의 작품을 썼지만, 지금 남아있는 것으로는 희곡인《알제리의 감옥》과 《누만시아》 정도이다. 마드리드에 정착한 후 리스본 출신의 귀부인 사이에 딸 이사벨 데 사아베드라를 얻었다. 이 딸이 세르반테스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직업도 없는 패잔병 세르반테스와의 관계를 끊고 일찍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버렸는데 이 사건이 가난한 시인에게 자극을 주어 그 후부터 영리적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584년 37세 때, 18살 연하의 부농 출신 여자인 카탈리나 팔라시오스와 결혼했다. 그녀의 지참금으로 잠시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생활고로 앞길이 막막해진 세르반테스는 세비야로 건너가 무적함대의 군수품 담당관을 거쳐 세금징수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세금을 예치해놓은 은행이 파산함으로써 손실을 변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운한 세르반테스는 공금 횡령죄로 옥살이를 해야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1605년에 출판한 《돈 키호테》의 성공으로부터일 것이다. 그러나 출판이후 집 앞에서 어떤 남자가 피살된 이상한 사건 때문에 다시 한번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어떤 사람이 치정 관계인 듯한 일로 그의 집 문 앞에서 칼로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세르반테스는 이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큰 곤욕을 치르다가 무혐의로 겨우 풀려났다.
세르반테스는 "정직함은 진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정직함은 최고의 처세술이다. 정직만큼 풍요로운 재산은 없다. 정직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률이다. 하늘은 정직한 사람을 도울 수밖에 없다. 정직한 사람은 신이 만든 것 중 최상의 작품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돈 키호테(제11부, 1605)》는 출판과 함께 큰 호평을 받아 판(版)을 거듭했지만 판권을 싼값으로 팔아 넘겼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그 후에도 여전히 어려웠다.
주로 금전문제로 여러 가지 의혹을 받으면서 불행한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만년의 그의 문학활동은 매우 활발하였다. 12편의 중·단편소설을 실은 《모범소설집(1613)》의 출판을 시작으로 당시의 시인들을 비평한 장편시 《파르나소산 여행(1614)》과 《신작희곡 8종과 막간희극 8종(1615)》을 잇따라 출판하였다. 그리고 1616년, 69세가 되던 해, 《돈 키호테》 2부를 출판했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를 쓴 목적으로 “항간에 풍미했던 기사도 이야기의 권위와 인기를 타도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더 나아가 인생 전체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대작이 되었다. 2005년은 돈키호테가 출판된 지 400년이 되는 해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돈 키호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소설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명제는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다운 인간형을 창조해내느냐 하는 데에 있다. … 그런데 《돈 키호테》는 문학이 분만해낸 숱한 미의 형태 중에서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그 중 가장 가깝게 접근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돈 키호테》는 읽는 이로 하여금 연민까지를 느끼게 하는 바로 그 유머 때문에 미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1616년 4월 23일,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에서 죽었다. 셰익스피어의 사망일과 같은 날이었다. 유언에 따라 우미아델로 가의 수도원에 묻혔으나 몇 번의 이장으로 무덤의 소재가 정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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