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토닥토닥 소리에 쉬어 가는

톰소여와허크 2012. 10. 7. 16:23

토닥토닥 소리에 쉬어 가는

- 추명희, 봄비의 자장가』   / 이동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윤동주, 서시) 소망하는 마음 맑기도 하지만 결연하기도 하다. 결연하다고 말한 것은 불의한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려는 불굴의 정신을 느껴서가 아니다.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나 걱정하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괴로워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또 그 부끄러움을 줄여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몇 줄의 시에서 온전히 전해오기 때문이다.

추명희 시인의 시집 봄비의 자장가를 읽고 서시를 떠올리게 된 것은 우선, 시가 주는 인상이 맑아서다. 또 두 사람은 사랑과 자기 성찰이라는 주제를 반복적으로 변주하고, 절대자 앞에 겸허한 자세로 기도하는 자세까지 꽤나 닮았다. 윤동주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며, 소멸해 가는 것 혹은 가여운 것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는데 추명희 시인은 여기에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자기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을 더한다.

 

 

물기 뚝뚝 흐르는

옷가지 널어놓고

서둘러 떠난 당신

 

당신 가슴에 엎지른 죄

아직 지우지 못한 채

하얗게 곰팡이 핀

얼룩 꺼내놓고

 

젖은 잎사귀 위에

후회 한 짐 얹어놓았을 때

밤 이슥도록 토닥이는 봄비

 

토닥토닥

당신 무릎을 베고

어제처럼 누워

자장가를

듣고 있었습니다

 

토닥토닥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은근한 기쁨이

내 몸을 재우고 있었습니다

 

- 봄비의 자장가전문

 

 

이 시는 어머니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미처 수습하지 못한 빨래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빨래 있던 자리에 얼룩과 후회의 감정을 놓고 내리는 비를 다 맞을 작정이었나 보다. 슬픔에 흠씬 젖어들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토닥토닥내리는 비에 더 많은 위로를 얻는다.

토닥토닥은 빗소리인 동시에 생전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자녀를 다독이는 소리기도 하다.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는 말이 어머니의 육성을 빌린 절대자의 전언처럼도 느껴지지만 사랑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당신 무릎을 베고/ 어제처럼 누워/ 자장가를/ 는 기쁨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지극한 사랑일 것이기에 토닥토닥연하여 내린 비는 독자의 가슴에도 사랑의 물꼬를 내려고 한다.

토닥토닥 튀는 빗물처럼 사랑은 운동하며 혈육에 대한 정으로도 나타나고, 이성에 대한 목마름으로 변하기도 한다. 빗물은 깊게 스며 생명의 뿌리를 적시기도 할 텐데, 그 저변에는 뭇생명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사랑의 바탕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는 거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래 시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알몸으로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날아가는 구름 위로

 

아이들이

교과서를 뜯어

비행기를 날린다

 

교실을 뛰쳐나와

떨어지는 종이비행기

 

멀리 날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한 채

푸드득 주저앉은

작은 새

 

바람이 불고

땡감이 떨어진다

 

따돌림 당한 아이처럼

깨진 상처가 안쓰러워

두 손으로 감싸본다

 

떫은 슬픔으로

아린 가슴

 

- 운동장에서전문

 

 

측은지심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렇다고 측은지심이 단순한 동정만으로 그친다면 그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불쌍한 처지를 헤아려 어루만지거나 그와 같은 불행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 물론 시를 통해서 후자까지 나아가기는 쉽지 않을 걸로 보지만, 시가 갖는 정서적 환기력를 감안하면 시는 더 좋은 공동체를 위한 도구적 속성도 분명 있다고 하겠다.

위 시에서 종이비행기와 작은 새와 땡감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존재로 따돌림 당한 아이의 비유로 보인다. 시인은 세상 밖으로소리치지 못하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아이를 아프게 바라보고 있다. “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존재의 고통을 직시하고 연민을 느낄수록 그 고통에 무책임하거나 냉정했던 시선의 반성이 있기 마련이다.

추명희 시인은 이웃과 사회로 나아갈 충분한 개연성을 열어 두고 이번 시집에서는 윤동주가 그러했듯이 자기 성찰적 성격의 시를 여러 편 선보인다. 여행이나 산책을 통한 일련의 시들도 그런 경우인데 외부의 풍경에 몰입되지 않고 내면을 일깨우는 데 부지런한 시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새/ 내 안의 어둠도/ 서서히 빠져나가/ 저 세상 너머 너머로/ 반짝이며 흘러가는데// 저 강물에/ 아직도 망설이는 나를 실어 보내고/ 더 남길 것 없으면 좋겠네”(저물어가는 여강에서부분)에서 보듯이 현실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한 발짝 비켜서서 현실을 응시하는 여유 속에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평화로워지는 삶을 그려 보이고 있다. 이런 태도는 일상을 반성하는 모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내 이웃아

잎 지는 가을밤에는

알뜰히 고개 숙이고

 

낙엽이 떨어지는 곳으로

따라 내려가

길을 물어라

 

들키지 않게

내 마음 내가 매질해가며

홀로 피멍 든 사람 있거든

 

아픈 마음만으로

우리는 형제자매

 

고해하지 않아도

살갗은 투명해져

죄가 비치는

가을밤

 

- 가을 고해전문

 

 

삶을 대하는 시인의 자세가 투명하게 드러나 보이는 시 한 편이다. 잎 지면 같이 고개 숙일 줄 알고, 잎 따라 낮은 곳에 처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삶의 을 묻는 배움의 자세를 놓지 않는다.

여기에 내 마음 내가 매질하는 자기반성이 가열하기만 한데, 반성이 깊을수록 부끄러움은 커진다. 부끄러움은 창끝을 자기에게 돌리는 행위다. 창끝을 불의와 부정에 겨누고 힘주어 나가는 자세는 꼭 필요한 행위지만 무단히 남에게 창끝을 겨누는 일도 없지 않다. 후자의 경우는 자기를 반성하지 않고,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의 창끝이다. 윤동주를, 윤동주의 시를 인간적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부끄러움의 미학이 깔려 있다고들 하는데 위 시도 그런 느낌이 다분하다.

매질 끝에 홀로 피멍 든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고, 부끄러움을 견디는 사람이고, 부끄러움을 줄여 나갈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런 마음들만 모여 사는 곳이 있다면 굳이 고해하지 않아도투명한, 지극히 인간적인 세상일 것이다.

저마다의 성찰 속에 공동체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 어떻게 살 건가에 대한 개개인의 질문과 고민은 퍽 요긴한 일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주인공 한나. 그녀는 문맹이었다. 자신의 문맹에 수치심을 갖고 있던 한나. 문맹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사랑도 직업도 모두 버리고 나치수용소 감시원이 되어 유대인 학살을 방조하게 되는 한나. 문맹을 끝내 감추기 위해 필적 감정을 거부하고 살인 누명을 뒤집어쓴 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감옥에서 스스로 죽는 한나.

 

자신의 약점을 들킬까 봐 도망치는 한나처럼 구석구석 맞추고 여민 세월. 우연히 지나치는 사람의 기척에 숨 가쁘게 숲 속으로 숨어버리는 다람쥐처럼. 쓰라림도 외로움도 마음 놓고 내지르지 못한 채 아직도 두려움의 옷을 두껍게 입고 있는 너. 마음 여미며 혼자 견딘 감옥이 참을 만한가?

 

항암제로 불탄 잡목 숲처럼 변한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죽는 순간까지 미소 짓던 여배우 파라 포셋. 마음의 병 부질없다고 홀가분하게 웃으며 그녀가 홀연 마음에 들어온 날, 따뜻한 손님을 모신 듯 훈훈한데 나는 내가 정말 마음에 들어세상을 향해 외치며 두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고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매일 도망치는 사람전문

 

 

한나로 살 것인가, 파라 포셋으로 살 것인가. 허상을 꾸밀 것인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낼 것인가. 추명희 시인은 파라 포셋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음과 달리 한나로 살고 있을지 모른다. 스스로 감옥을 짓고도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그게 감옥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기도 한다.

한나에서 파라 포셋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솔직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감옥을 하나 더 지려고 삶을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추명희 시인은 내면의 거울을 꺼내서 자신을 비추고 독자도 비춘다. 거울에 비친 헛것을 훔치고, 거짓을 아파하는 시간을 통해서 좀 더 성숙한, 살갗 투명한 이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추명희 시인의 이번 시집 봄비의 자장가토닥토닥소리에 잠시 쉬어 가는 보석(步石)인 동시에 사랑과 연민에서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부지런히 연습함으로써 얻은 보석(寶石)인 게다.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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