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이 몹시 아팠다. 작은 시골이라서 엄마 등에 업혀 마을에 한 명밖에 없는 공중 보건의에게 가서 가끔 주사 한 대를 맞는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머리가 허연 그 늙은 의사는 술을 너무 좋아해 코가 빨간 사람이었다. 겨울 내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방 안에 누워 시름시름 앓던 나는, 어느 날 방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는데 봄빛이 완연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내려가 화단의 흙을 살살 파보았더니 연초록 싹들이 흙을 밀치며 일제히 올라오고 있었다. 다시 방 안으로 돌아온 나는 엎드려 ‘봄’에 대한 시를 썼다. 그리고 곧 병이 나았다. 시를 쓰면서 나는 내 자신이 치유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 우리는 삶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삶에 상처받는 사람들이다. 상처로 마음을 닫는다면, 그것은 상처 준 이만이 아니라, 세상 전체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삶과의 단절이고, 고립이다. 고립은 서서히 영혼을 시들게 한다. (중략)
자비의 어원은 ‘함께 상처를 나눈다’는 뜻이다.
티베트의 전통적인 수행법 통렌은 그런 자비심의 극치를 보여 준다. 수행자는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세상의 고통과 불행과 부정적인 요소들을 다 자기 안으로 흡수한다고 상상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숨을 내쉬면서 온정과 자비와 빛 에너지를 세상에 내보낸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시를 읽고 쓰는 행위는 바로 이 통렌과 같다.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왜냐하면 상처받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감정이기 때문이다. 영혼은 상처받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 존재는 더 큰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류시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편집 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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