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프로다 / 이기와
수족관같이 좁고 어두운 지하실 단칸방
물갈이하지 않은 혼탁한 수질 속
지체장애자인 그녀와 치매인 그녀의 어머니가 산다
그녀의 어머니가 투명 랩을 뜯지 않은 채
자장면 위에 장을 붓는 순간
단칸방은 이내 시커먼 바다로 번들거린다
치맛자락에 쏟아진 걸쭉한 바다를 치대며
단무지처럼 기억이 노란 어머니가
싱글싱글 웃는다
그러자 그녀의 삐뚜름히 돌아간 입에서도
찰진 반죽의 웃음이 쏟아진다
얼떨결에 멀쩡한 나도 따라 웃어보지만
내 웃음은 가짜, 속이 덜 익은 군만두
영 서툴다
그녀는 프로다
피할 수 없는 난감함을
웃음으로 커버하는 노련한 선수다
발가락에 들린 숟가락이 삐뚤빼뚤 입을 찾아가는 길
보기에 아슬아슬 멀고도 험하다
그러나 그녀는 프로다
불완전하면서 완전하다
외줄타기 곡예사처럼 조마조마함을 연출하지만
실수하는 일 없이 면발을 입으로 가져간다
형제나 이웃, 신의 가호도 없이
의연하면서도 정확하게 밥의 길을 찾는다
- 『그녀들 비탈에 서다』, 서정시학, 2007.
* 웹 검색창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입력했더니 여러 말들이 뜬다. 그 중에 프로는 ‘안 된다’는 말보다는 ‘해보겠다’는 말을 많이 한단다. 프로는 외부의 일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거나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거다.
그녀는 프로다. 지체장애자인 그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실수를 웃음으로 넘긴다. 멀쩡한 화자만 제대로 웃지 못한다. 그녀는 온전치 않은 몸으로 면발을 손 대신 발가락으로 곡예하듯 입으로 가져가지만 실수하는 법이 없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밥의 길”을 찾아가니 기특하고 의연하다. 결코 평범할 리 없는 일상을 웃음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데는 프로가 갖는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성격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아슬아슬 멀고도 험하다”는 발가락에서부터 입까지 오는 숟가락의 여정일 뿐만 아니라 그녀 인생 전체를 함축한 말이다. 하루하루 “아슬아슬”, “멀고도”, “험하다”의 연속인 삶을 생각하면 프로라는 말이 점점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프로가 모든 일을 극복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나.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일엔 주저앉기도 하고 그런 실수와 실패를 이웃과 나누고 도움을 받는 일상이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더 절실해 보인다. 같은 단칸방이라도 “수족관같이 좁고 어두운 지하실”을 벗어나서 이동하기 편한 곳으로, 해가 드는 곳으로 옮겨갈 권리가 그녀에게 당연하게 주어지고 행사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시인은 씩씩하기도 하고 또한 슬프기도 한 그녀를 세상에 소개했다. 그녀를 통해 가진 게 너무 많다는 생각보다 나눈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가벼운 아마추어리즘을 흔든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