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동화 / 서정춘

톰소여와허크 2013. 9. 17. 15:48

 

 

 

변시지, 폭풍의 바다8

 

동화 / 서정춘

 

 

 

 

  어느 여름 날 밤이었습니다

  마부자식의 몸에서는 망아지 냄새가 난다는 내 나이 아홉 살 때 나는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과 그 말머리에 흔들려서 찰랑거린 놋쇠방울소리가 하도나 좋았습니다 그러면 나도 커서 마부가 되겠노라 마구간에 깃든 조랑말의 똥그랗고 검은 눈동자 속에 얼비친 별 하나 별 둘을 들여다보며 별밤지기로 놀았습니다

  이런 날 밤이면 이따금 조랑말의 말머리에서 찰랑거리던 놋쇠방울소리가 밤하늘로 날아올라 별빛에 부딪쳐서 영롱하게 바스라지는 소리들을 눈이 시리도록 우러렀던 나만의 황홀한 밤이 있었습니다

- 『물방울은 즐겁다』, 천년의시작, 2010.

 

*  스스로 “나는 평생 삼단(三短)이다.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문인수, ‘지네 (서정춘 傳)’에서)고 했으니, 이 시는 그 중에서도 가장 긴 편에 해당하는 시다. 아마 동화라는 이야기 형식이 시를 길게(?) 늘여 놓았나 보다.

  망아지 냄새가 나는 아버지를, 그 냄새가 배인 자신을 화자가 부끄러워했다면 이 시는 동화가 아니라 아이가 그 과정을 어떻게 지내왔는지에 초점을 두는 성장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조랑말을, 조랑말의 놋쇠방울소리를, 조랑말의 눈에 비친 별을, 그걸 가까이 볼 수 있는 마부라는 직업을 동경함으로써 동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를 곁에 둔 목동이 행복감에 젖어 있듯 이 시의 화자 역시, 결핍도 없고 갈등도 없이 충족된 상태에서 아름다운 동화에 살고 있다. 그 속에 계속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주의를 자꾸 딴 데로 돌리게 하고, 동화와 먼 곳으로 데려가는 경향이 있다.

  “놋쇠방울소리가... 별빛에 부딪쳐서...바스라지는 소리”가 어떤 것일까. 잠시 생각해 본다. 삶이 각박할수록 동화의 한 장면을 자꾸 그리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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