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참빗 / 노향림

톰소여와허크 2014. 8. 16. 22:18

참빗 / 노향림

 

 

인사동 길바닥에 놓인 골동품들

가무잡잡한 이민족 여인이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무심히 지나는 행인들 앞에 고개 떨구어 졸기도 한다.

보자기에 펼쳐놓은 오종종한 물건들,

작은 술병, 작은 녹차 잔, 놋쇠 불상과 토기가

얼핏 보면 제법 골동품처럼 보이는 중고들이다.

그중 내 눈에 띄는 것은 참빗이었다.

양옆이 촘촘한 국적 불명의 대나무로 만든 빗이 아닌

그 옛날 어머니의 경대 앞에 놓여 있던

참나무로 만든 반달형 빗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굴려보는 참, 참

나는 입속으로 참나무, 참나무 하다가

그 여인을 깨우며 불쑥 참족이 아니냐고 묻는다.

지금도 토기를 빚는다는

베트남에 귀속되었다는 소수민족

실제로 참족 여자들은 아직도

진흙에 모래를 섞어 도기를 빚는다고 한다.

이건 엄마 큰 도기, 이건 딸의 작은 토기 하며

간절히 사주기를 바라는 눈빛은 깊숙했다.

오래 시간을 빗기다 손때 덧칠해진 참빗 하나와

음각 문양이 있는 작은 토기 하나를 샀다.

그날 밤 참빗은 내 풀어헤친 머리칼을 빗겨주었고

야자 잎으로 지붕을 얹은 흙벽과 흙방이 있는

빗살무늬 토기를 빗던 꿈의 참파 왕국*으로

나를 데려가기도 했다.

 

-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 실천문학사, 2012.

 

* 인도네시아계 참족이 세운 나라로 베트남 중부에 위치했다.

 

 

  - 김용준의 <근원 수필>에 골동품 가게에서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선택한 것은 잘 빠진 연적이 아니라 얼룩덜룩 못 생긴 연적이다. 못 생겼다고 핀잔주고 구박하면서도 이 두꺼비가 자신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위로를 주고 있음을 말한다.

  골동품에는 다수가 갖기를 원하면서 비싼 취급 받는 것도 있겠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도 있다. 누군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몹시 탐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시인은 반달형 참빗에 눈이 꽂힌다. 재질이나 희귀성에 대한 전문가적인 안목도 있겠지만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참빗의 ‘참’에 이끌려 참파 왕국과 소수민족으로 명맥을 잇는 참족의 토기까지 참, 참, 참 이어지는 상상력도 무리 없이 읽힌다. 어머니가 참빗으로 빚은 머릿결과 참빗으로 빚은 듯한 빗살무늬토기가 자연스레 매치되기 때문일 것이다.

  참빗 하나로 먼 나라까지 다녀오는 호사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대충 만만하게 생겨서 언제든 눈 맞추고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골동품 하나 갖고 싶다.(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멍 / 권진희  (0) 2014.08.30
새들이나 넘을 수 있는 고개 / 송문헌  (0) 2014.08.22
여진 / 이병률  (0) 2014.08.08
거미를 보며 / 임보  (0) 2014.07.31
침대를 타면 / 신현림  (0) 201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