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이카로스의 추락>
이카로스 302호 / 정훈교
당신의 날갯죽지는 바람을 가르지 못한다. 단 한 번도 바람을 품어본 적 없으므로
마른 입술이 또 하나의 입술을 물고 또 하나의 입술이 당신 이마를 짚는 밤, 낡은 TV 안테나가 당신의 신호음을 감지했다면 그것은 먼 우주에서 먼지로 부유하다 어느 골방에서 침잠하는 제2의 자전(自轉)인 셈이다 당신은 이제,
바람의 방향대로 깃을 세우고 부러 낙법을 익혀야 한다 302호 열쇠 구멍에 달을 밀어넣으며, 낡은 나무 침대를 생각한다 내일과 밤이 없고 별과 오늘이 없는 날갯짓을 하다가도
애무 없이도 붉게 타는 노을을 생각하다가도, 계단을 오를 땐 완강기 먼저 찾는다
당신의 날개는 퇴화했으므로
- 『또 하나의 입술』, 시인동네, 2014.
* 이카로스는 바닥을 치고 새로운 세계로 비상하고 싶은 욕망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그 욕망으로 인해 좌절하거나 깨지고 마는 불운의 우상이기도 하다.
302호의 당신은 날개의 흔적을 간직한 이카로스의 후예일 수는 있겠으나 신화와 꿈이 사라진 현실 속에서 날 생각도 없고 날 힘도 사라진 무력한 사내에 불과하다. 모험심은 줄고 조심성은 늘어 조금이라도 바람을 얻을 것 같으면 날갯짓보다는 낙법을 먼저 궁리한다. 이러한 현상은 현실이 이카로스의 날개를 무참하게 꺾은 그 이후의 일이다. 내일도 오늘도 어떤 기대를 갖기 어려울 거라는 거.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벗어날 수 없는 자전(自轉)이자 넋두리 같은 자전(自傳)일 게다.
하지만, 이런 기록도 외부로 보내는 간절한 신호로 읽는다. 옥상에 올라가서 다시 날자, 외치던 이상(李箱)이 박제가 되지 않고 되살아나듯이 시인의 골방이 부활의 장소가 되는 비밀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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