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동행 / 조삼현

톰소여와허크 2015. 3. 11. 22:01

동행 / 조삼현

 

 

누군지도 모르는 아무나 당신, 우리

연애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수작 한 번 부려보는 건 어때

빛이 그림자를 내외(內外)처럼 동행하듯

시가 시인을 한평생 데리고 살 듯

늘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 그대여

재래시장 허술한 순댓국집에서 만나

시린 소주잔으로 첫인사를 기울인,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아등바등

지하철을 갈아타는 그대여

검정 비닐봉지에 두부 한 모 사 들고

해거름 녘 골목길로 휘어져 가는 이여

목소리가 작아 어깨를 움츠린,

정이 안양천 물비늘처럼 남실거려

하찮은 것에도 그렁그렁 눈시울 젖는 이여

오늘도 무사하였구나, 서로 등 다독이는

늘 중심이 아닌 길모퉁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무나 당신, 우리

팔짱을 껴보는 건 어때

스크럼을 짜보는 건 어때

 

- 『어느 수인에게 보내는 편지』, 도서출판b, 2015.

 

 

  *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기관이 양지만 지향하면서 스스로를 음지로 만든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듣는다. 이와 같이 어떤 집단의 이미지는 실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포즈를 취하느냐와 직결되는 문제다. 시인은 교도소 재소자와 동행하는 교도관 신분이다. 공직자 혹은 직업인으로서 시인의 자세가 살짝 궁금해진다.

  시가 곧 그 사람일 수는 없겠으나 이 시엔 시인의 정체성이나 지향점이 선명하게 묻어난다. 동행은 길을 함께 걷는 것이다. 누구와 걷는지, 어떤 길을 걷는지에 따라 시인의 천성이나 성향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가난하지만 소주잔으로 정을 내고, 백 없이 목소리도 작지만 “하찮은 것에도 그렁그렁 눈시울 젖는” 선한 마음끼리 서로를 위하고 같이 연대하자는 목소리가 살갑게 느껴진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과 낮은 자리에 눈길을 주는 마음이 진정성 있게 와 닿는 것이다.

  시와 동행하며 “길모퉁이”에 있고자 하는 시인을 “중심”으로 밀면 실례가 되겠지만, 중심엔 그런 사람이 있어야 이웃에게 좋다는 게 또한 삶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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