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팔작지붕, 그늘 / 김송포

톰소여와허크 2017. 2. 7. 19:11




팔작지붕, 그늘 / 김송포



   어릴 적 놀던 그늘이 있다. 아득한 기와집이다. 대문과 마루와 방들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이웃들이 대문 앞에서 맞이하였다. 왜 이제 왔느냐, 맨발로 뛰어나온다 백 년을 기다렸다. 말할 수 없는 그늘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도시와 빌딩을 기웃거리며 골목으로 돌아오듯 고양이가 집을 둘러본다. 콩팥에서 오줌이 새는 줄 모르고 허겁지겁 시간을 먹으며 수십 년 동안 뒤도 안 보고 걸었다


   ‘그대로 놓아두세요’ 말하듯 팔작지붕은 눈이 오면 맞고 비가 오면 새고 번개를 쳐도 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아이들이 떠나가도 지붕 아래에서 뜨개질하며 기다렸다. 팔작집 온돌방에서 하룻밤 묵는다. 엄마의 젖을 더듬듯이 툇마루에 앉아 밤하늘 만진다. 별똥은 일억 광년 달려 마당에 떨어진다. 시골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고 도망치던 고양이가 집으로 돌아온다. 지붕 추녀가 유난히 길게 하늘을 향한다. 성당에서는 가끔 남학생을 보러 드나들고 은행나무 밑에서 낙엽 뿌리며 깔깔거리던 영자의 웃음이 낙엽처럼 구른다. 마당에서 비석치기 하던 기억이 쏟아진다. 툇마루에 앉아 북두칠성을 읽는다.


  백 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고양이가 그늘에서 팔작지붕을 보고 또 보듯이.


- 『부탁해요 곡절 씨』, 시인동네, 2016.


   * 팔작지붕 집은 측면에 박공(삼각형 모양의 양쪽 경사를 이루는 널빤지)을 대고 그 밑으로 지붕을 달아낸 집이다. 삼각형이 주는 안정된 느낌에다 처마 끝을 올린 추녀로 인해 멋스러움이 있는 집 구조다. “지붕 추녀가 유난히 길게 하늘을 향한다”는 팔작지붕 기와집은 시인이 유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새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홍길동이 집을 떠나 길로 나서듯 어른이 되는 것은 더 큰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과 같다.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선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험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헤매다가 자기 집 한 채 얻거나 빌리면서 다시 주저앉기도 하지만 떠남과 정착은 둘 다 유혹이 강하다.

   시인에게 고향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그런 마음의 원심력이 커지면서 먼 데서 먼 데로,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떠돌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모천회귀하는 연어와 같이 고향 집으로 왔다.

“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는 팔작지붕과 사람이 시인을 반갑게 맞아주지만 이는 옛 향수가 자아내는 환영일 가능성도 크다. 실제든 환영이든 팔작지붕 집에 마음이 고요히 깃든 날의 풍경은 아늑하다. 어머니 그리며 밤하늘을 만지니 때마침 별똥이 떨어지는 풍경은 옛날과 현재를 아름답게 이어준다.

   이제 팔작지붕 집은 낡을 대로 낡았겠지만, 팔작지붕 그늘엔 여전히 그리운 것이 살고 있다. 그 그늘에서 또 다시 별똥 떨어진 곳으로 길 떠나고 싶은 유혹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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