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생선 / 박상천
고향 여수에서 가져온
마른 양태를 지져 소주를 한잔 마신다.
마른 생선에서는 참으로 오묘한 맛이 난다.
생물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그 맛에 소주가 더 맛나다.
국물 한 숟갈에 소주 한 잔,
또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서대는 쪄야 맛있고
양태는 지져야 맛있다며 딸아이가 소주 한 잔을 거든다.
어느덧 애비 고향의 맛을 알아주는 나이가 된
딸아이 말에 가슴이 흐뭇해진다.
고향 떠나 40년을 객지로 떠돌았지만
고향을 떠올릴 때만다
마른 생선 국물을 떠먹은 입안처럼
내 가슴은 늘 따뜻하고 행복해진다.
냉장고 문을 열고
마른 서대가 몇 마리나 남았나 살펴보고 있자니
내 염려를 눈치챈 아내가 빙그레 웃고 서 있다.
취한 탓일까
냉장고 속에 내 고향 바다가 어른 거려
얼른 냉장고 문을 닫는다.
-『낮술 한잔을 권하다』, 책만드는집, 2013.
* 백석의 시가 음식 박물지라 이를 만큼 북방의 음식을 기록해 둔 것처럼 남도에도 그런 시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남도의 밤 식탁>(송수권, 2012)이나 <맹산식당 옻순비빔밥>(박기영, 2016)도 생각난다. 좋은 음식은 향으로 맛을 자극한다. 음식 자체가 향이 나지 않거나 오히려 역할 때면 곁가지 음식으로 향을 더해 주거나 바꾸어 주어야 한다. 시의 향도 더하고 빼는 퇴고의 과정을 거칠수록 더 그윽해지는 면이 있긴 하다. 음식을 소재로 시를 쓸 때 제일 좋은 것은 음식 향기와 시 향기, 두 향이 서로 상승해서 저절로 흠흠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지만 말처럼 간단하지 않은 걸 안다.
시인의 시에는 술내가 추가된다. 불러낸 음식이 아까워 소주 한 잔은 해야 한다. 가자미, 양태, 민어, 능성어, 서대 등은 마른 생선으로 사랑 받는 음식이다. 개중에 양태와 서대를 불러낸 것은 고향 여수의 흔한 생선인 데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손을 거쳐 입에 든 것이 나이 들어서도 몸이 그 맛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몸이 기억하는 맛에는 사실, 고향과 유년과 가족이 다 들어 있다. 일찍이 백석이 말한 그대로다. 그러니 고향 음식을 보기만 해도 언제든 가슴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지는 추체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는 주말엔 마른 생선 찾아서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고향이 아니더라도 여수로, 통영으로, 포항으로, 갈 수만 있다면 원산까지 가서 고루고루 마른 것을 챙겨서 나눌 건 조금 나누고 혼자 먹을 건 아껴서 먹자. 냉장고가 비면 라면과 추억을 먹고. (이동훈)
수우도 어느 민박집에서(2016)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 곳 / 정일관 (0) | 2017.07.25 |
---|---|
싹수 / 김수상 (0) | 2017.07.20 |
집으로 가는 길 / 홍해리 (0) | 2017.07.09 |
‘보기’가 아니라 ‘비기’가 싫다는 말 / 김민정 (0) | 2017.07.05 |
더치페이 / 김정원 (0) | 2017.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