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수 / 김수상
작은 화분의 꽃들이 다 죽었다
물을 너무 많이 주었다고 했다
화분의 흙을 버리기 아까워서
큰 화분으로 흙만 한데 모았다
이른 봄, 보험회사에서 보내온
개양귀비 씨를 그곳에 뿌렸더니
푸른 혀들이 돋아났다
어라, 그해 봄에는 나에게도
아직 시건이란 놈이 남아 있어
싹수가 영,
노랗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 시건- ‘철’의 경북 사투리. 시건이 들다(철이 들다)
- 『편향의 곧은 나무』, 한티재, 2017.
* 귀농과 귀촌을 염두에 두고 성주에 터를 고른 시인은 일방적 사드 배치에 저항한다. “참외들도 주먹을 쥐었다 / 사드 가고 평화 오라!”(「소성리의 봄」)며 전위에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삶은 시인을 자꾸 흔들고, 그런 중에도 할 도리를 하려고 애쓰는 게 시인의 양식일 것이다.
서정과 운동!, 서정이 세상과 타인을 수용하는 잔잔한 그릇이라면 운동은 세상의 변화를 요구하며 물결을 만드는 그릇이다. 서정과 운동이 별개의 것이 될 수 없고 운동의 동력도 서정에서 나온다는 말을 믿는데, 이번 시집도 그런 생각을 거든다.
“얼음과 물이 / 통째로 한 몸인 것임을 알고 / 햇빛에 글썽이며 / 흘러 흘러서 갈 것”(「형편」중)이라든지 “오래 돈을 벌지 못해서 / 생활이 찌그러졌다 / 검은 나뭇가지에서 꽃이 올라오고 있다”(「근황」)든지 고단한 일상과 그 안의 물기와 반짝임까지 전하는 서정적인 시편들이 눈에 남는다. ‘싹수’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실수 혹은 몰이해로 작은 화분의 꽃을 죽게 했고, 또 한 번은 그 실수의 흔적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기에 씨의 발아를 지켜보는 기쁨을 갖는다. 자신의 소소한 선택 행위와 그로 인해 생명을 얻은 것들이 기특하지 않을 리 없다. 마침 이 시를 읽을 때, 구피가 담긴 투명바구니에 눈이 갔다. 물을 제때 갈아주지 못해 부예진 것을 냉큼 들고 가서 청소했으니, 시인의 서정이 내게 옮겨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별일이다. 사소한 일에 감사하고 사소한 일에 의미 부여할 줄 아는 마음보가 머리 내민 게 이 시의 싹수다.
싹수는 여기저기 푸르게 돋아서 살랑거릴 것이다. 시의 싹수가 제대로 철이 나려면, “푸른 혀”를 부지런히 움직여 자신의 에너지로 세상을 푸르게 물들여야 한다. 이리 생각하니, 운동이 곧 서정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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