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벼랑 끝에 하늘

톰소여와허크 2018. 1. 27. 00:18




인병선, 『벼랑 끝에 하늘』, 창작과비평사, 1991.


시집을 낸 문필가이면서 짚 문화 연구가이기도 한 인병선은 신동엽의 아내로 더 알려져 있다. 인병선의 산문집에서도 신동엽 관련 이야기에 눈길이 먼저 간다.

책방에 종종 들리는 여고생 그녀에게 친구 대신 가게를 보던 신동엽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 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서로 호감을 가진다. “그는 가난했고 무직자였고 친구의 서점이나 봐주는 룸펜이었다. 그러나 그의 형형한 눈은 늘 이상과 신념에 불타 그의 남루한 옷차림을 다 싸고도 남았다”는 인병선의 촌평대로 신동엽은 실직과 구직을 오가며 건강 문제로 근심을 주다가 세상을 일찍 떴으니, 룸펜을 크게 벗어난 거 같지는 않다.

월북 경제학자 인정식을 아버지로 둔 인병선은 자신도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신동엽은 극구 반대한다. 글쓰는 데만 치열했을 뿐 집안일을 아내에게 전담시키는 데 대한 인병선의 불만도 적잖다. 남편의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서운함이 시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자신의 시를 쓰지 못하게 한 배경이 되었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는 시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늘 시어로 터질 듯 가득차 있었다. 그는 시에 유능한 정도만큼이나 일상생활에는 무능했다”고 고백하며 인병선은 이런 남편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음을 말한다. 이후, 남편의 이른 죽음으로 사는 데 바빴을 인병선은 대학 의대에 다니던 큰아이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가는 걸 보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좌절한다.

아이가 추구하는 삶과 자신이 매달리는 삶의 간격에서 고민하던 인병선은 아이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어쩌면 그 아이의 아버지 신동엽 시인이 사십 평생 끌어안고 몸부림했던 그 무엇과 다름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남편이요 아들이면서 나는 왜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까. 나는 그들에게 아내요, 어머니이면서 어째 끝내 등돌림을 당해야 했을까. 밀착된 일체, 완벽한 동지요 반려자요 어머니가 될 수 없었을까”라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거듭된 반문과 눈물 속에 아들과 남편을 새로 이해하고 관계를 복원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후, 인병선은 “나는 더는 시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뿐더러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적는다.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이상도, 김수영도, 신동엽도 가정사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약점이 있고 그 약점으로 인해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신동엽은 죽음을 앞두고 인병선에게 자신이 먼 곳으로 “망명(亡命) 떠난 셈” 치라고 당부했지만, 부여의 신동엽 생가엔,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생가」에서)라는 인병선의 시가 걸려 있다.

책 표지와 속지 그림은 신동엽과 인병선의 딸, 신정섭이 그렸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