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톰소여와허크 2018. 2. 2. 21:47

 

 

 

Winslow Homer(1836-1910),Dad's coming (1873)

 

 

 

프란츠 카프카(이재황 역),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문학과지성사, 1999.

 

 

- 카프카는 첫 애인과 두 번 약혼하고 파혼한다. 두 번째 만난 여인에게도 결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정 장애가 있거나 내면의 불안이나 동요가 크다는 증거로 보는데, 이 책에서 카프카 스스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아버지께 쓰는 편지 형태지만 생전에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또한 카프카의 성격 그대로다. 아버지가 왜 자신한테 두려움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그에 바로 답하지 못했던 카프카가 시간을 두고 답한다는 게 편지의 시작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옳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자식에게든 남에게든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권위적인 성격이다. 아들은 그걸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밖으로 표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기에 갈등을 오래 지속시킨 이유가 됐다.

“제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이건 아마도 거의 모든 경우에서 아버지의 반대가 예상될 수 있었지요. 아버지의 반대는 생각에 대해서건 사람에 대해서건 무차별적이었습니다”며,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아버지의 욕설과 비방은 견디기 어려웠고, 직원에게 함부로 대할 때는 자신이 대신 빌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적는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에 대해서는 아예 말대답을 못하게 만드는 아버지의 행동이 반복되면서 카프카는 자신이 말더듬이 증세까지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는 이승하 시인의 고백과 너무 일치해서 카프카와 이승하, 소설가와 시인이 자신이 상처와 고뇌를 어떻게 회피하고, 또 어떻게 대면하고 직시하려 했는지 그 지난한 과정이 곧, 그들의 예술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주저하는 배경 설명은 정신 증세까지 의심될 정도로 오락가락하지만 이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고갱이를 잡아 보자면, 지나치게 신중하고 소심한 자기 성격에 결혼이란 것이 “제 주변에 걱정이 무성하게 자라”게 하고,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글쓰기가 방해받을까 봐 두려웠다는 정도일 것이다.

편지 말미에는 “우선은 너(카프카)도 네 자신의 어떠한 잘못과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아버지 목소리를 가정해서 들으며 균형을 맞추려고 했지만 자신의 논리에 예상되는 반론을 넘겨짚어 적은 것으로 이해된다.

카프카는 수영장에서 물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자신에게 아버지가 수영 동작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자신은 이를 따라하지 못하는 일들이 고통스러웠다고 전한다. 아버지만 모를 뿐이다. 아버지 노릇도 어렵고 아들 노릇도 쉽지 않지만, 어느 쪽이든 지나친 간섭은 피하는 게 좋겠다. 거리를 두고 덤덤히 바라보는 여유가 사랑을 지키는 일이기도 함을 생각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