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피노키오

톰소여와허크 2018. 4. 1. 12:47




피노키오 / 이동훈



화장실에 학주쌤이 떴다.

상식이 코에서도, 바닥에 미처 비벼 끄지 못한 담배에서도

연기가 새어나왔지만 상식이는 무조건 잡아뗐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며

학주쌤이 상식이의 뭉툭한 코를 잡아당기는데

길이는 어떨지 몰라도 어지간히 빨개지기는 했다.

니는 무슨 일로?

내놓은 자식인 상식이와 애당초 오줌을 눈 게 잘못이었다.

삥 뜯긴 돈에 대해선 함구할 수밖에.

학주쌤은 더는 묻지 않고 상식이 코를 잡고 나갔다.

거울을 찬찬히 살피니

상식이 주먹에 인정이 있었는지 코가 말짱하다.

상식이나 나나 거짓말을 늘어놓아도 코가 늘어지는 일은 없다.

숙이고 사는 게 이기는 거라며

늘 세상에 지고 사는 아버지도 코 하나는 탈이 없다.

피노키오는 왜 하필 코가 길어지는 걸까.

상대더러 눈치를 채라는 신호일 것 같으면

귀때기 빨개지는 정도면 그만이고

입술이 비뚤배뚤해진다거나 코끼리 귀가 되는 것도 재미나지 않는가.

코를 만지작대다 설핏, 눈이 흐렸는데

코가 작대기처럼 자꾸 길어진다.

자기 거짓말을 자기가 보라는 신호였던가.

나무인형의 그것이 딱딱하게 굳어

훌쩍이는 소리를 몇 번 낸다.

- ‘엉덩이에 대한 명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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