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어떤 연민 / 이태수

톰소여와허크 2018. 7. 3. 00:04


어떤 연민 / 이태수


자주 마음 바꾸고

얼굴 자주 바꾸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안 바뀌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태에

세상 파도 잘도 타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곡예하듯, 잔머리 잘 굴리며

재주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고,


시시때때로 몸 색깔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완장 색깔을 바꾸는,

얼굴 두꺼운 사람들이 부럽다고,


자기는 할 수 없는 일을 예사로 하면서

위풍당당, 막무가내,

잘나가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볼일과 별 볼일 없는 일을 잘 가려

안면까지 확 바꾸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자기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할 일들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친구 앞에서

먼 산이나 바라보며 말더듬이가 될 수밖에,


- 『어떤 연민』,문학과지성사, 2014.



  * 굴원의 「어부사」를 읽으면, 세상을 흐리는 부류와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굴원과 적당히 섞여서 지내는 것도 사는 방편이라고 말하는 어부의 입장이 충돌하고 굴원이 자기 신조를 한번 더 밝히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두 입장에 다 취할 바가 있고, 혼탁한 세상에 혼자 발을 빼는 것보다는 한 발을 들여놓고 조금씩 주변을 맑게 하는 것도 차선이 될 수 있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굴신(屈伸)을 잘하는 사람이 바람도 맞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일 텐데, 옳고 그르고의 분별심을 갖고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면 이 또한 편한 일은 아니다. 시인의 연민은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나 그런 사람이 출세하는 세상을 향해 있기도 하지만, 이를 부러워하는 친구를 향해 있기도 하고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있기도 하다. 시인의 연민은 연민 대상에 대한 동조가 아니라 그 반대에 가깝다. 양심적으로 사는 것과 별개로 수단을 부려서라도 성취하는 삶에 대한 욕구도 자연스런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시인은 애써 이런 마음과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이다.

출세하는 사람은 “볼일과 별 볼일 없는 일을 잘 가려”서 “볼일”에 집중하겠지만 시인은 “별 볼일 없는 일”에도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굴원의 시는 지금도 사랑받지만 그의 극단적인 선택엔 “볼일”에 대한 지향을 떨쳐버리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볼일 안 보는 것도 평생의 과제인지 모른다. (이동훈)




                                                  이경윤,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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