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 김종필
세상에 오기 전에 이모는 식구들도 어딘지 모르는 산골 사과밭집 머슴에게 시집을 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순녀라는 이름만 기억하는 이모는 아이 다섯을 낳았고, 이모부가 서쪽 하늘 너머로 떠났을 때, 처음 만났는데, 사느라고 언제 다시 만났는지 가물거리지만
난전에서 다리를 절며 막걸리를 파는 이모는 종아리에 딱딱한 알을 소주병으로 풀다가, 알이 꽉 찬 도루묵을 골라 연탄불에 구워 주네.
아픈 엄마를 닮은 여자는 다 이모다.
-『쇳밥』, 한티재, 2018.
* 도루묵은 어원이 확실치 않은 단어 중 하나다. 피난 간 임금이 ‘묵’이란 생선을 달게 먹고 쫓기는 와중에도 성은을 내려 ‘은어’란 이름을 하사한다. 나중에 궁에 돌아온 임금이 은어를 찾았지만 예전의 그 맛이 아니라 도로 ‘묵’이라고 해라 했다든지, ‘도로 물려라’ 그랬다든지 하는 설이 있다. 애초에 바닷가 돌 틈에 흔하게 있던 ‘돌목’이란 물고기가 ‘도루묵’으로 변해왔다는 설도 그럴듯하다. 멸치가 며루치가 되었다면 더 설득력이 생겼을 텐데, 며루치의 분발이 필요하다.
시인이 자주 다니는 팔달시장 난전에서, 도루묵 안주에 막걸리 몇 잔 나눈 적이 있다. 시인은 어엿하게 영업하는 집도 꼭, 난전이라고 부른다. 비싼 요릿집이나 세련된 가게보다는 허름한 구석이 있는 데서 동질감을 느끼는 정서가 무심중에 작용한 걸로 보인다. 쇳밥 먹는 노동자 시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부유롭고 멀끔해서 자본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부유롭고 멀끔한 삶이 나쁘기야 하겠는가 마는(아니, 정신 차리자. 얼마나 좋을까 마는) 시인의 어머니나 이모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갖은 고생해서 자식을 키우고, 늙어서도 호강하지 못하고 아픈 날이 많을 것이다. 난전에서 다리를 절며 막걸리를 파는 이모, 아픈 다리를 소주병으로 문대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하는 이모, 동생 같고 조카 같은 남루한 손들에게 인심을 내는 이모는 곧 집의 어머니요, 집의 이모다. 그러니 이 시는 이 땅의 이모에 대한 서시로 꼽을 만하다.
그런데 세상인심이란 게 이모는 그렇게 찾으면서 고모를 불러내는 데는 왜 인색한가? 전통사회에서 부계에 대한 막연한 책무가 느껴져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시인의 들려주는 아버지 이야기는 퍽 인상적이다.
“막걸리 얼근하신 밤마다
아무리 힘들어도 바른 길 가거라
아버지를 되새기는 밤”(「金正道」에서)
다시 시장 난전에 가면, 이모의 도루묵 안주에다 쇳밥과 막걸리밥을 섞어서 잘 흔들어 마셔야겠다. 어른의 유지를 들었으니 취했다고 바르게 걷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김종필 시인은 생선 안주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루묵을 도로 물릴 게 아니고 내가 더 먹으면 된다. 술은 좀 양보해도 좋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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