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 『그림 형제 동화 전집』, 현대지성, 1999.
- 그림 형제 동화는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으로 시작해서, 1815년 한 권을 더해 156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후, 몇 차례 개정을 거쳐서 1857년 210편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210편 이야기엔 반복되는 스토리도 있고, 우리 옛이야기와 유사한 것도 여러 편 있다. 몇 장면을 들추어본다.
<늑대와 일곱 마리의 새끼 염소>는 늑대가 엄마 염소가 집을 비운 뒤 새끼 염소를 잡아먹는 이야기다. 엄마 염소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분필 한 토막을 먹으니 쉰 목소리가 고운 목소리로 바뀐다. 당시에 분필이나 분필가루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달랐나 보다. 밀가루를 발라 늑대의 거친 손을 부드럽게 위장한 것은 전래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똑같다. 선후 관계나 영향 관계 혹은 뿌리가 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늑대 뱃속에서 새끼를 꺼내고 자갈로 채운 것은 동화집의 <작은 빨간 모자> 이야기와 유사한다.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난 상황에서도 그걸 뒤집어 다시 희망을 말하는 게 동화이기도 하다. 최악의 상황으로 몰려가면서도 반전을 꿈꿀 자유는 있다.
<열두 왕자>는 막내딸이 숲 오두막의 열두 백합을 꺾자 열두 왕자들이 까마귀로 변하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선 7년간 말을 해서도 웃어서도 안 된다는 거다. 인근의 다른 왕자가 막내딸을 배필로 데려갔으나 “웃지 않는 인간은 악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인간임이 분명해”라는 왕자 어머니의 확신으로 화형을 당할 위기에 빠진다. 전후 사정이나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칼자루 쥐고 흔드는 격이다. 이런 사람들의 의심 없는 결정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기도 함을 생각하게 하지만, 왕자의 어머니 입장에선 며느리가 탐탐치 않았을 건 분명하다. 잔혹 동화라는 별칭답게 왕자 어머니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대가를 끔찍하게 치른다. 좀처럼 웃지 않는 인간이 옆에 있다면, 깊이 이해하는 마음으로 한 번쯤 웃어주는 게 좋겠다.
디즈니 영화로도 상영되었던 <라푼첼>은 “라푼첼, 라푼첼, 네 머리채를 늘어뜨리렴”이라는는 대사가 시적으로 들리는 동화다. 라푼첼이 성에 갇힌 것은 상추를 너무 먹고 싶어 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담을 넘어 여자 마법사의 집 상추를 서리한 대가다. 라푼첼의 독일어 뜻이 상추란다. 라푼첼은 황량한 땅으로 쫓겨나고 라푼첼을 사랑했던 왕자는 장님이 되지만 라푼첼의 눈물 두 방울로 모든 걸 회복한다. 이 눈물의 힘을 더는 믿지 않으면서 동화의 세계를 졸업하겠지만 때때로 동화를 꿈꾸며 현실을 견디거나 아예, 현실을 바꾸는 동력을 얻기도 한다.
<백설공주>의 백설공주는 독 사과를 먹고 쓰러지지만 왕자의 뽀뽀나 눈물로 되살아난 것은 아니다. 왕자의 시종이 관을 메고 움직이다가 덤불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목에 걸린 사과 조각이 삐져나온 것이다. 마술의 힘이 아니라 우연찮게 스스로 관 뚜껑을 열고 나온 것이라고 메모해 둔다.
<커다란 무>는 전래동화와 연관 관계를 따져보면 좋은 작품이다. 동생이 커다란 무를 왕에게 바치고 그 대가로 보물을 얻게 되자 형이 더 나은 것을 왕에게 바쳤다가 무를 얻게 되었다는 얘기다. 전래동화엔 농사꾼이 큰 무를 사또에게 바치고 송아지를 얻게 되자, 이웃의 욕심쟁이 농사꾼이 송아지를 바치고 무를 얻게 되었다는 얘기니 우연의 일치로 보기엔 유사도가 너무 높다.
동화 전집엔 <실 잣는 여자들>처럼 재미나게 정성스레 꾸민 이야기도 있지만 시시하고 맹랑한 이야기도 많다. 재미난 이야기는 수많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결실한다. 그 안에 사람들의 삶이나 도리 같은 것도 자연스레 담겨 있을 것이다. 재미만 좇을 게 아니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이야기 풍년 속에 살면서 스스로 짓는 삶이 결국, 남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되는지 돌아보는 일도 소중해 보인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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