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한티재 하늘 1, 2』, 지식산업사, 1998.
미완의 『한티재 하늘』이지만 등장인물 수가 만만찮다. 주무대인 삼밭골은 한티재 앞쪽 골짜기다. 책 두 권이지만 가족관계를 정리하는 데도 제법 시간이 든다.
한티재는 큰 고개란 의미와 함께 높은 곳이 대개 그렇듯 시야가 탁 트인 곳이란 의미가 있을 성싶다. 대처로 가지 못하고 그 험한 고개를 의지해 골짜기마다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고생스럽고 한스런 삶도 연상이 된다.
소설 시작은 반란군(의병)이 한티재 이쪽저쪽에서 활동하던 시절이다. 반란군 활동을 하다가 죽은 남편, 반란군 가족으로 끌려가서 죽은 시아버지를 장사지내고 복남이는 아들 서억이를 데리고 어떻게든 살 결심을 한다. 정원의 남편은 동학운동 가담자를 쫓던 토벌대에게 끌려가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정원이도 삼밭골로 와 이석, 이순, 이금이 남매와 살 도리를 찾는다.
종살이하던 실겅이가 동생 주남이를 남겨두고 울며 넘어가던 고개도 한티재다. 실겅이 남편 기태는 4남매 남겨두고 나뭇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깔려 죽고 만다.
친구 사이인 이석과 서억은 서억 아버지가 묻힌 곳을 찾아 한티재를 함께 넘기도 한다. 이후 이석은 도망 노비 달옥과 숨어 살기 위해 다시 한티재를 넘어 청송 달배골로 향한다. 달옥에겐 눈물겹게 고마운 일이지만 이순이를 비롯해서 남은 가족에겐 고통스런 일이 되었다.
장돌뱅이 동준이는 문둥병에 걸린 분옥이를 데리고 한티재 너머 영양 다래골로 간다. 이들의 사랑은 거짓 없이, 계산 없이 순수하다. 또 한 명의 문둥병 환자인 재득이가 어둠 속에서만 있었던 것과 대조된다. 결핵으로 죽음 직전까지 가면서 평생 병에 시달렸던 권정생 선생은 재득이와 분옥이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견주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분들네 장남 장득이는 노름빚에 시달리다 가족을 데리고 한티재를 넘어 우구치(봉화 방면)로 향한다. 추위와 굶주림 끝에 아내 이순이는 “어디든동 사람 사는 게 가서 빌어먹어도 살아야제, 이냥 앉아서 죽을 수는 없잖니껴.”라는 말로 장득이 입을 막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선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이순이의 말은, 소설 속 등장인물의 삶을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중에 문둥병까지 달게 물려받은 착한 남자 동준이가 분옥이 부탁으로 처형 달옥이에게 가는 대목에서 한티재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
“한티재를 넘었다. 산과 들판은 옛날 모양 그대로인데 여기저기 신작로 공사로 산을 허물고 강을 메우고 있었다. 논밭에서 한창 바쁘게 일해야 하는 남정네들이 끌려 나와 길닦이를 하느라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는.
마무리하지 못한 소설에서는 이순이의 아들 딸들, 귀돌이 딸 쌍가매와 말숙이의 딸 옥주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법한데 권정생 선생은 쉽게 연필을 들지 못한 걸로 보인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1,2권에 전력한 만큼 더 핍진하게 쓸 동력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을 것도 같다. 사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도 1,2권이 제일 좋긴 하다.
지금 한티재는 어떤 모습일까. 한티재에 직접 오르지 못할 바엔 권정생 생가의 빌뱅이 언덕에서라도 그쪽 편을 조망할 수는 있는지 없는지 좀 더 눈여겨봐야겠다. (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화> 그림 형제 동화 전집 (0) | 2019.02.04 |
---|---|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통 (0) | 2019.01.27 |
<에세이> 너 없이 걸었다 (0) | 2018.12.21 |
<에세이> 퇴계의 매화 사랑 (0) | 2018.12.08 |
<에세이> 마음아, 넌 누구니 (0) | 2018.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