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물푸레나무 언덕 / 황종권

톰소여와허크 2019. 4. 7. 08:56

물푸레나무 언덕 / 황종권

 

 

, 별을 세어볼 때가 있다

 

심줄이 단단해지는 달의 인력을 딛고 지느러미 붉게 돋아난 물고기들도 있어

 

물푸레나무 언덕으로 가면, 숨이 트이는 저녁이 보였다

 

바다를 건널 수 없었지만 유도복을 입고 업어치기를 하면

 

저 멀리 하늘과 땅이 갈라지곤 했다 물푸레나무를 몸에 들이면 근육이 더 단단해질 거라고 믿었다

 

오늘은 세 번 무릎이 꺾였고 손목이 돌아갔으나 부러지지 않았다 나는 강철을 아비로 두었던가, 아니 물푸레나무가 몸속의 피로 흐르고 있었으니

 

다시 몸을 접어 익히기 자세를 취한다

 

그늘을 놓아주니, 물푸레나무 언덕이 나를 힘껏 당기라고 말한다

내 몸은 나무와 섬이 이어져 있는 언덕이었다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 천년의시작, 2018.

 

 

* 시인은 유도 고단자다. 몸의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해선 몸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일이 필수적이다. 사실, 몸의 근육을 닮은 나무로 모과나무나 서어나무를 떠올릴 수 있지만 시인은 물푸레나무를 먼저 생각한다. 물푸레나무는 수피 안으로 근육을 감춘 나무다.

화성 전곡리 언덕의 물푸레나무를 세상에 알린 고규홍 나무학자는 한국의 나무 특강에서 물푸레나무는 재질의 강도와 탄력으로 인해 도리깨, 도끼자루, 달구지 바퀴에서 지금의 야구방망이와 골프채 머리 부분까지 쓰임새가 다양하다고 소개한다. 그러니 물푸레는 물을 푸르게 하는 서정 외에도 한 근육하는 몸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다.

격투기 운동이 대개 그러하겠지만 유도 역시, 상대와 힘을 겨루는 데 전력을 다하다 보면, 균형을 잃는 지점이 생기고 그때 무릎이 꺾이고 손목이 돌아가는 일도 흔히 있겠다. 어쩌면 삶이란 것도 이쪽의 소매를 잡고 간을 보다가 어느 틈에 멱살을 틀어잡고 소매를 잡아채면서 메다꽂기도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낙법을 배워서 충격을 줄이는 훈련도 겸하면 좋겠지만 있는 힘은 제대로 써봐야겠다는 결기도 필요하다.

힘껏 당기는 자세는 상대의 힘에 비례해서 균형을 잡는 모습이기도 하다. 다리와 허리로 버터야 하고, 어깨를 집어넣어 힘을 쓸 수 있는 동작을 만들어야 하고, 팔과 손목과 손가락 하나하나도 가진 힘을 다 써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몸을 굽혀서 준비 동작을 취하는 게 유도의 익히기 자세.

시인은 온힘으로 당기기를 하되 특정 상대를 넘어뜨릴 마음은 없다. 물푸레나무 언덕을 혹은 나 자신을 그렇게 당겨서 나무와 섬이 이어져 있는 언덕의 평화와 평정과 고요를 살고 싶은 것이다. 세상과 부딪쳐 배우기를 좋아하는 시인인 만큼 먼 바다를 향한 모험에 설레며 운동복을 챙겨 물푸레나무 언덕을 내려오기도 하겠지만 뒤에 물푸레나무 언덕을 배경으로 가졌다는 건 큰 자산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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