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라싸 / 김재진

톰소여와허크 2019. 7. 13. 22:08




라싸 / 김재진

 

 

산이 부스러지고 있다.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산이 끌어안은 모래가 연꽃처럼

하늘로 치솟고 있다.

서 있기도 숨 가쁜지

강가의 버드나무가 혀 내밀고 있다.

불모의 산들이 신앙하는 승왕(僧王)의 겨울궁전

마음아, 나를 조이며 끊임없이 내 안에서 복닥거리던

나사 같은,

햇살에 튀어나온 콩깍지 같은,

내 마음아

저 높은 궁전 나부끼는 깃발 위에 앉아

훨 날아가고 싶은

훨 잊어버리고 싶은

누가 불러내어 나갔나.

몸 적응하도록 기다리지 못한 내 마음

저 혼자 구경가고 없다.

여기까지 뭐 하러 왔나.

허락도 없이 놀러나간 내 마음 여기까지 왜 왔나.

세월도 불성도 몸 끝나면 없는 것

놀러나간 마음을 몸이 누워 원망한다.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도서출판 들녘, 2001.

 

 

감상: 라싸는 티베트의 수도다. 1950년 중국에 강제 편입된 후에도 독립을 위한 봉기와 희생이 뒤따랐지만 중국의 지배력은 여전하다. 그곳의 지도자로 있던 14대 달라이 라마는 포탈라궁을 비우고 1959년부터 인도에 망명해 있다.

티베트 여행 중에 라싸에 이른 시인은 몹시 설렜나 보다. 나사처럼 조이는 긴장이나 압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내 들썩이며 햇살에 튀어나온 콩깍지처럼 낯선 세상을 신기해하다가 나부끼는 깃발 위에 앉아/ 훨 날아가고 싶은마음이 된다. 그런 자유는 자신을 조여 오는 현실의 속박이나 과거의 언짢은 기억을 훨 잊어버리고 싶은마음이기도 하다. 마음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문제는 몸이다.

해발 3,600미터의 라싸에서 시인은 고산병에 걸렸음 직하다. 몸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놀러나간마음은 밖에서 밖으로 돌고 자신을 돌보지 않으니 몸져누워 원망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원망하는 것도 마음이라고 시비할 수도 있겠으나 몸과 마음을 일부러 분리시켜 몸이 마음을 읽고, 마음이 몸을 읽는 시늉을 해보는 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몸과 마음의 일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몸이 아픈 까닭에 시인은 낯선 곳에서의 구경도 깨달음도 몸 끝나면 없는 것이라고 몸을 편들어 주고 있지만 이 역시 마음이 시킨 일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천수를 다해가는 달라이 라마도 그의 몸과 별개로 그의 마음은 라싸의 겨울궁전에 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내면 하늘이 돕는다고 하지만 안 되는 일도 있고 몸이 따르지 않는 일도 있다. 물론, 몸 편한 대로 놔둔다고 해서 잘 되는 일도 별로 없다. 한번 아픈 뒤에는 몸을 생각하라며 주저앉는 마음도 있다. 그런 중에도 먼 데를 향해 나부끼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배낭을 만지작거리기도 할 것이고.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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