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양말
- 일생 단 한 편의 시 7 / 이원규
강물 따라 삼천리 길 걸을 때
묵언 직전에 수경 스님이 말했다
이왕지사 물 살리자고 나선 길
세수 빨래도 하지 말자
대운하 반대니 운동이니 다 내려놓고
강물처럼 흐르면서 온몸 더러워지자
땀에 젖은 양말 햇볕에 말리며
한 열흘 정도 신었더니
던지면 장화처럼 벌떡 일어섰다
코골이 발꼬랑내 강변 천막의 밤
양말들이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달빛을 깨물다』, 천년의시작, 2019
감상 : 수경 스님과 시인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다. 분단의 질곡 속 좌우 이념의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에 동참한 두 사람은 지리산 도보 순례에 나서면서 의기투합한 걸로 보인다. 이후 수경 스님은 새만금사업에 반대하며 그곳 갯벌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하며 쓰러지기도 했고, 대운하에 이은 4대강 사업을 자연에 대한 약탈 행위로 규정하고 다시 도보 순례에 나서서 무분별한 개발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이원규 시인도 스님의 곁을 지키며 생명과 평화의 길을 나란히 걸어왔다.
이들의 고투에도 불구하고 새만금사업은 마무리되었고, 4대강도 사업도 상당한 후유증을 남기며 강행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 살리자고 나선 길”이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고 말할 순 없다. 자본과 경제와 개발을 지상의 과제로 밀어붙이는 권력과 이익집단 속에서 자연과 생명의 무한정한 가치를 돌아보게끔 했으며, 비판과 성찰에 따른 문제의식이 확대되어 이다음의 정책을 시행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생태주의 시각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이 평화로이 공존하는 방향을 이전보다 더 고민하게끔 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간디와 킹 목사로 이어지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연장으로, 자기희생을 통한 사회 변화를 꾀했던 점도 평가할 만하다.
큰 변화도 작은 실천에서부터 오는 법. 수님과 시인은 도보 순례 중 세수와 빨래를 자제하며 자연을 최소한으로 쓰기로 한다. 땀으로 목욕하고 잠시 쉬어갈 땐, 다들 피곤해서 코골이 소리가 천둥 같았을 것이고, 발꼬랑내도 천지에 가득했을 것이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장면에 동화 같은 영상이 하나 추가된다. 꿉꿉하게 젖은 채로 햇볕에 말리기를 반복했던 양말이 주인처럼 바닥에 쓰러지지 않고 장화처럼 벌떡 일어서 있는 풍경이다. 여기까진 실제 그러했을 것이다. 그 양말이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직립 보행하는 상상까지 더하면서 유쾌해지는 것은 땟국물 절은 양말이야말로 자연과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순수, 그 표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