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대한 명상>수록작

돼지들의 반란

톰소여와허크 2019. 10. 28. 20:00




돼지들의 반란 / 이동훈

 

 

은행 부스를 기웃거린 멧돼지는

업무 방해와 고객 상해죄를 물어 즉살되었고

새끼들과 이동하던 어미 멧돼지는

농작물 피해의 주범으로 몰려 사살되었다.

도심으로 내려와 시민을 놀라게 하고

마을로 내려와 사고를 유발하니

몰이사냥을 해야지 그냥 둘 수 없단다.

멧돼지 입장에선 환장할 일이다.

산을 인간에게 속속 내어주고

구석구석 놓인 덫에 걸려 바비큐 물량 대면서

인기척에 쫓겨 길로 나서다가 낭패되고

길이 끊겨 도로를 건너다가 치이고

허기져 마을로 들었다가 배때에 총구멍 내기 일쑤인데

도리어 민간 피해가 이만저만이라고 떠드니

야멸치고 억지스럽기까지 하다.

잔뜩 김 서린 산중턱이 수상한 건

참다못한 멧돼지들이 어금니를 세우고

산 아래로 내릴 기세 때문이다.

생매장을 가까스로 면한 집돼지의

콧김도 거칠어져

고깃덩이처럼 벌건 대낮이 위태롭다.

 

-『엉덩이에 대한 명상(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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