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독종 / 전선용

톰소여와허크 2019. 12. 8. 23:04




독종 / 전선용

 

 

흡입력 좋은 입으로 무형의 죄를 먹은 사람들이

노을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데요

사실은 지구가 편도염 때문에 목젖이 부은 겁니다

노동자 임금을 빨아먹는 빨대가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게 떠다닐 수 있을까요?

속이 빈 것은 요란합니다

빨리 취하고 싶은 사람은 소주를 마실 때

빨대를 꽂기도 하지요

취하면 눈에 보이는 것 없어

불법에도 과감해집니다

고래가 죽었다는 보고서를 먹이사슬이 바뀌었다는 말로 이해하면

포식자가 빨대인 것을 알게 됩니다

빨대가 독해지면 끝을 벼리고 막 달려드는데요

한 구의 고래 시신이 해변으로 떠밀려올 때

지구 목구멍은 원숭이 똥구멍이 됩니다

 

-『지금, 환승 중입니다, 도서출판 움, 2019.

 

 

감상 : 저녁노을은 왜 붉게 보일까. 빨간색에 가까울수록 빛의 파장이 길고 산란은 덜 되어 먼 데까지 도달하는 특성이 있단다. 여기에 더해, 낮에 비해 저녁이 되면 태양이 지구와 비스듬하게 있으면서 빛이 더 많은 대기를 지나와야 하는데 파란색 등은 대기층에서 산란해 버리면서 붉은색 계열만 더 눈에 띈다는 것이다. 하루의 먼지가 대기에 쌓이는 저녁이어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는 얘기를 참고할 것 같으면, 노을은 지구의 오염된 대기층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보기에 아름다운 노을이 사실, 지구가 편도염 때문에 목젖이 부은상태일 수도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시인이 소개한 한 구의 고래 시신도 근래에 들어 부쩍 자주 접하는 기사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떤 신문사는, ‘고래 배 속이 쓰레기 하치장이었다로 자극적인 기사 제목을 뽑기도 했는데 결코 과장이 아니란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고래가 제 수명을 살지 못하고 줄줄이 변사체로 발견되는 것은 소화할 수 없는 플라스틱 등이 위에 부담을 주어 그 쇼크로 죽었다는 설이 다수다. 먹이사슬의 최상위층이 고래고 그 고래의 포식자로 플라스틱이 등장한 셈이다. 자연과 평화를 한 번에 쭉 흡입하여 이전에 없던 비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인 만큼 플라스틱 중에도 시인은 빨대란 상징을 가져왔을 것이다.

자연을 망치는 빨대는 인간의 편리만 생각하는 이기적 문명의 유산이지만 시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빨대의 외연을 조금 확대시켜 놓는다. “노동자 임금을 빨아먹는 빨대가 그렇다. 자본가와 자본가 이익을 대변하는 관료와 언론과 학자의 목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하청의 하청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고용 불안에 고통 받게 하고 저임금을 감수하게 하는 일련의 시스템을 곧 빨대로 생각해볼 수 있다.

모든 생명은 귀하고, 모든 노동은 평등하다는 인식과 실천이 지구의 목구멍을 푸르게 할 것으로 믿는다. 그나마 소주에 빨대 꽂는 사람은 그런 세상을 염원하며 자기 몸을 위로하고 또 힘들게 하는 것이니 다른 빨대보다 인간적이라고 하겠다. 아름다워 보이는 노을이 실제 그렇지 않은 면이 있듯이 자신이 당연히 누리는 권리도 혹 자연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빨대짓을 한 대가는 아닌지 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숱한 빨대로 인해 지구의 목젖이 원숭이 똥구멍처럼 빨갛게 부을 것이란 경고를 시인은 잊지 않는다. 물론, 원숭이에겐 조금 미안한 일이긴 하다.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주의 우물 / 배창환  (0) 2019.12.30
푸른 잎새 사이로 태양은 지고 / 오민석  (0) 2019.12.21
대바구니 행상 / 김정원  (0) 2019.11.21
변주 / 나병춘  (0) 2019.11.07
금치 / 나석중  (0) 2019.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