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영원의 문에서, (줄리언 슈나벨 감독, 2019)
아를 시절 이후 고갱과 크게 다투며 정신분열 증세로 입원까지 하게 된 고흐. 그는 자기 안에 뭔가가 있다는 말을 한다. 오랜 색채 탐구와 습작을 통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스케치와 색을 입히는 작업을 통해 그걸 완성시켜 나가는 데 누구보다 철저했다. 문제는 세상이 그런 천재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일 텐데 고흐는 숱한 실망을 겪으면서도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동생 테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제적 무능력에 주위의 냉대와 멸시가 겹치고 광기에 가까운 행동과 발작이 이어졌어도 그의 이성을 의심할 순 없다. 900여 통의 편지가 그 증거다. 이는 물론 지금의 시각이다. 당시에 아를 주민들은 고흐가 노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러빙 빈센트>에서 그러했듯이 이번 영화에서도 고흐는 늘 불안하다. 화구를 메고 산으로 들로 부지런히 오가는 고흐 뒤를 따르며 영상은 수시로 흔들린다. 카메라를 고정하지 않고 인물을 좇으면서 불안 심리를 증폭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고흐의 오베르 시절은 그의 그림이 절정에 이른 시기지만 겨우 두 달 남짓이었다. 의사 가셰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그 무렵의 편지를 찾아보니 가셰의 초상에 어떤 색을 썼는지에 대해서만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나는 사람들을 사진처럼 너무 흡사하게 그리지 않고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을 그리고, 성격의 특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또 그 효과를 높이는 수단으로서, 색채에 대한 우리의 현대적인 지식과 감각을 이용하여 초상을 그리려 노력하고 있어.”(1890년 5월경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박홍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라고 말하며 고흐는 1세기 이후에나 자신의 초상화가 인정받을 것이라고 했다. 1990년 경매에 나온 가셰의 초상이 930억 정도에 낙찰되어 당시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으니 고흐의 예언이 무서울 정도로 적중한 셈이다.
고흐는 자신이 그림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선물이 되기를 바랐다. 미쳤다는 주위의 평에 고흐는 “약간의 광기야말로 최고의 예술이죠”라고 둘러댄다. 아마 고흐가 실제 했던 말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대사일 것이다. 예술가라면, 선물다운 선물 하나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전율하며 그러지 못해서 미쳐버릴 거 같은 한 순간을 견뎌야 한다. 고흐는 그렇게 살다간 예술혼 그 자체였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