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 』낭독회

톰소여와허크 2020. 1. 20. 15:58














여러 선생님들 덕분으로 낭독회를 무사히 끝낸 듯합니다.

노래 선물 주신 정영주쌤, 진금염 쌤, 천광호쌤

그림 선물 주신 곽도경쌤

낭송 선물 주신 김민서쌤, 임상원쌤, 김영빈쌤

춤 선물 주신 형남수쌤

빛깔 고운 떡 선물 주신 이향원쌤

향기 고운 꽃 선물 주신 전하나쌤, 정현숙쌤

글과 그림을 빌려주고 덕담을 해준 정지창쌤, 이재동쌤, 정태경쌤

물레책방 장우석쌤

본인 일보다 더 애써준 초설 김종필쌤

가까이 또 멀리 자리를 빛낸 주신 한 분 한 분 다 고마운 선생님들

뒷자리까지 더 풍성하게 해주신 마음들.

까먹지 않고 살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할까 봐 낮술 도움도 받았지만

너무 일찍 마셔서 혀가 다시 굳어진 탓인지

뒷자리 시간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 때문인지

얼버무린 말들이 약간의 후회로 다가오는 시간,

여기에 준비했던 원고를 새로 붙여놓고 장보러 나갈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 2019. 1.17. 낭독회 후기

 

 

(산문)를 살게 하는 힘

이동훈

 

 

안녕하세요. 천천히 깊이, 시를 읽고 싶은 당신에게(2019)란 책을 내고, 이렇듯 낭독회란 이름으로 모임으로 갖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 주인공이란 생각으로 좋은 말씀을 듣겠습니다만 또 하나의 주인공이 제 책인 만큼 저로서도 뭔가를 얘기해야 한다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저 자신이 시를 쓴답시고 흉내를 내고 있고, 제 책이 시가 있는 산문인 만큼 어떻게 시나 산문을 쓰게 되었는지 그게 저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준비해온 자료는 오래 고민해온 것은 아니고 낭독회를 코앞에 두고 억지로 짜낸 면이 있습니다. 거칠더라도 평소 느끼는 생각 그대로를 담으려고 했으니 부족한 재주에 애를 조금 썼구나, 이렇게 이해해주시기를요.

 

 

제목을 (산문)를 살게 하는 힘이렇게 뽑았는데, 그 첫 번째 힘은 지난 시절 만났던 사람과 책이라고 말해야겠습니다. 이번 책에도 적어두었지만 가난한 집에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방에 뒹구는 손바닥만 한 김소월 시집을 읽고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와 같은 표현에 꽂혀서 다른 친구들에게 써먹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칠성시장 노점에서 만난 톰 소여의 모험도 잊기 어려운 책입니다. 한 권의 책에 우정, 사랑, 모험, 정의가 생생하게 그려져서 이 책이 제가 이만큼 사는 밑거름을 만들어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침 관련 시가 하나 있어 붙입니다.

 

 

두 길의 수심水深을 통과하라는, 마크 트웨인!*

아기 오줌으로 졸졸대던 건천을 가늘게

가까스로 지나오던 유년에

꿈에도 일렁이던 빛살이었다.

 

우기가 되어서야 미시시피가 된 도랑

동네 형 허크는 흔들리는 스티로폼에 납작 엎드려

넘실넘실 오는 사과를 잘도 줍더니

균형을 잃고 허우적대다가 먼 데로 흘러갔다.

불었던 물이 빠지면서

꿀꿀하던 돼지 새끼가 도로 사냥감 될 때

길갓집 부끄럼 많은 베키 양은

내놓은 자식인 톰 형과 함께 행방불명되었다.

하수관을 밟고 오줌 누던 나는

금세 차오른 수위에 발목을 오래 적셔 두기도 했다.

도랑물이 머리맡까지 굼실거릴 때

이부자리에 지리기도 하고

덤벙하는 소리에 소스라치며 깨기도 하던 시절

시궁으로 변한 도랑을 박쥐 떼가 날고

그걸 쫓는 돌멩이가 위험 수위를 한껏 높였어도

소설 속 인물처럼

끝내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그런 일몰이면

한 길, 또 한 길 수심을 좋이 지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듣기도 했던 것인데

아직도 우기가 되면

수위 조절이 안 되는 가슴 바닥에

몰캉한 그리움의 마크가 산다.

 

- 졸시 마크 트웨인!전문

 

(* 필명 마크 트웨인에서 트웨인’(two)의 고어체다. 미시시피강 수로 안내인들은 조타수를 향해 "마크 트웨인!"이라고 외쳤는데, 배 밑으로 수심이 두 길 정도 되니 지나가기 안전하다는 뜻이다.)

 

 

김소월이나 마크 트웨인이 제 유년에 어떤 식으로든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근래에는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한티재 하늘을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물레책방 이층이 한티재 사무실인데 이름에 권정생의 영향을 받았을 줄 압니다. 물레책방 장우석 감독도 해마다 권정생 문학기행을 만들어 안동을 다녀오는 권정생 팬입니다. 물레 이름은 인도의 간디 선생을 연상케 하지만, 실제 권정생 선생도 스스로 바느질해서 옷을 기워 입으면서 자본의 영향을 최소화하고자 했던 분입니다. 권정생 이름처럼 바른 삶을 살다 가신 분인데, 그런 삶과 삶이 묻어나는 문학이 저에게는 시적으로 다가옵니다. 저의 산문에 뒤표지 추천 글을 써주신 김용락 선생은 권정생을 따르면서 세상에 권정생을 많이 알린 분이기도 한데요. 두 분의 아름다운 만남을 소재로 한 시 한 편 읽고 가겠습니다.

 

 

의성 단촌리 출신, 스물한 살의 문청인 김용락

도서관에서 까치 울던 날(1979)을 읽으며

교회 종지기인 동화 작가가 고향집 인근 사람인 걸 안다.

김용락은 자전거에 수박 한 덩이 싣고 가서

입성 초라하고 머리카락 듬성한 사십 대 중반의 권정생을 만난다.

김용락이 랭보를 말할 때 권정생은 광주를 말하고

수박에 답하듯 사과나무밭 달님(1978)을 건넨다.

동화 속 달님은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소식 없는 남편의 그리운 얼굴이지만

김용락의 달님은 권정생 얼굴이다.

사과나무밭 지나 조탑동 교회 문간방으로

오층전탑 곁을 지나 빌뱅이 언덕 오두막으로

혼자서도 가고 식구 데리고도 간다.

첫 시집 푸른 별(1987)을 낼 때 권정생으로부터

영원히 소년처럼 깨끗할 듯싶은 시인이란 발문을 받고

다다음 해엔 첫 딸 이름을 받고

딸의 친구 삼으라고 강아지 죽딕이 밥딕이도 받는다.

나중엔 구박까지 받아가면서

권정생이 따로 챙기지 않은 글들을

애써 모으고 묶어서 우리들의 하느님(1996)도 낸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조탑동 가는 길, 사과나무 뿌리째 뽑혀나가더니

돈이 있어도 남북 어린이 몫으로 돌리고

끝내 가난한 삶을 바꾸지 않던 권정생도

평생의 병치레를 끝내고 어매 곁으로 간다.

임종을 지킨 김용락은

살던 흔적을 남기지 마라는 유지는 차마 받지 못하고

일없이 빈 오두막에 앉아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2008)를 받아 적는다.

강아지 똥(1974)이 민들레 몸 되고

한 거름이 한 걸음 되고

잘 묵힌 거름이 바른 생을 돕고, 바른 생은 바른 생을 부른다.

사과나무 꽃 없는 밤하늘에

김용락의 자전거가 수박 한 덩이 싣고 간다.

 

- 졸시 권정생과 김용락전문

 

 

저는 김소월도 좋아하고 권정생도 좋아하지만 이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바깥에서 볼 땐 불우한 면이 도드라지기도 합니다. 김소월은 소월이 부정을 느끼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해 정신병자가 되고 맙니다. 어머니, 숙모, 고모 등 소월 가계의 여성들은 남편이 아프거나 죽거나 떠나거나 후살이가는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권정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 문제로 부모가 서로 떨어져 있기도 했고, 안동으로 귀향해선 결핵을 앓은 권정생은 변변한 치료도 못 받고 집을 나가 거지 생활 끝에 병이 악화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팬이 가장 많은 작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시를 살게 하는 힘 그 두 번째는 결핍감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상처 혹은 콤플렉스라고 말해도 상관없겠습니다. 김원일, 이문구, 이문열, 김성동 이 네 사람의 공통점을 물으면, 이름을 날린 소설가라고 바로 얘기할 겁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아버지가 사회주의자로 활동하다가 월북을 택하거나 죽음을 당해야 했던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남다른 환경 속에서 감수성은 더 예민해지고 존재의 내면이 깊어지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사정이 글을 쓰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박경리 선생이나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박완서 선생도 아이를 앞세우는 참척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책에 소개한 김기림은 어머니와 누이를 일찍 여의었고, 이상은 큰집에 입양되어 자랐습니다. 이광수, 피천득, 이태준, 김유정 등은 10세 즈음에 양친을 다 잃고 고아가 된 대표적 문인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삭이고 디디면서 어떻게든(있는 그대로든, 허구와 상상을 보태든 간에) 자기 삶과 생각을 표현하고 기록해 두려는 정신을 갖고 있었고 우린 그 결과물인 작품을 보면서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를 살게 하는 힘 세 번째는 사람 사이 관계라고 적어봅니다. 백석을 좋아해 그의 이웃이 되기 위해 정현웅이 이사를 했던 것처럼, 이태준이 성북동에 자리 잡으니 절친인 화가(수필가, 미술 사학자) 김용준이 그의 이웃이 되어 이사를 오게 됩니다. 이태준의 집을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 하고, 김용준의 집을 노시산방이(老枾山房)라 했는데요, 이 두 사람의 성향이나 글도 꽤 닮았는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개연성도 높습니다. 두 사람의 수필 보시죠.

 

한 오 원쯤 받으셔서 미닫이에 비 뿌리지 않게 챙이나 해 다시죠

그는 내가 서재를 짓고 챙을 해 달지 않는다고 자기 일처럼 성화하던 사람이다.

나는, 챙을 하면 파초에 비 맞는 소리가 안 들린다고 몇 번 설명하였으나 그는 종시 객쩍은 소리로밖에 안 듣는 모양이었다.

그는 오늘 오후에도 다시 한번 와서

거 지금 좋은 작자가 있는뎁쇼…….” 하고 입맛을 다시었다.

정말 파초가 꽃이 피면 열대지방과 달라 한번 말랐다가는 다시 소생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마당에서, 아니 내 방 미닫이 앞에서 나와 두 여름을 났고 이제 그 발육이 절정에 올라 꽃이 핀 것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가 한번 꽃을 피웠으니 죽은들 어떠리! 하물며 한마당 수북하게 새순이 솟아오름에랴!

소를 길러 일을 시키고 늙으면 팔고 사간 사람이 잡으면 그 고기를 사다 먹고 하는 우리의 습관이라 이제 죽을 운명의 파초니 오 원이라도 받고 팔아준다는 사람이 그 혼자 드러나게 모진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무심코 바람에 너울거리는 파초를 보고 그 눈으로 그 사람의 눈을 볼 때 나는 내 눈이 뜨거웠다.

 

이태준, 무서록1944 중에서

 

가지마다 보기 좋게 매달렸던 감들이 한 개 두 개 시름없이 떨어지고, 돌돌 말린 감잎이 애원하듯 내 앞으로 굴러 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보기 좋던 나무 둥치가 한 겹 한 겹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나는 다른 어느 나무보다도 감나무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주인이 감나무를 위해 살고 있다시피 한 이 노시산방의 진짜 주인공이 죽는단 말이 될 말인가. 모든 화초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감나무만은 구해야겠다는 일념에서 매일같이 십 전짜리 물을 서너 지게씩 주기로 했다. 그러나 감나무들은 좀처럼 활기를 보여주지 않은 채 가을이 오고 낙엽이 지고 했다. 여느 해 같으면 지금 한창 불타오르듯 보기 좋게 매달렸어야 할 감들이 금년에는 거의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은 놈들조차 패잔병처럼 무기력해 보인다.

주인을 못 만난 그 나무들이(明春)에 다시 씻은 듯 새 움이 돋고 시원한 그늘을 이 노시산방과 산방의 주인을 위해 과연 지어 줄 것인지?

 

김용준, 근원수필1948 에서

 

파초를 사랑해서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돈도 포기하고 파초의 마지막까지 지켜보려는 이태준과 감나무를 사랑해서 가뭄에 타들어가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김용준이 비슷한 구석이 있구나 하는 것을 쉽게 느끼셨을 겁니다. 보잘것없는 생명에도 마음을 기울이는 게 글 쓰는 자의 도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수연산방 얘기는 조금 더할 게 남았습니다. 김용준의 수연산방은 이후 후배 화가 김환기에게 넘겨집니다. 김환기는 김향안(이상의 아내 변동림이기도 함)과 함께 여기서 얼마간 지내다가 파리와 뉴욕으로 떠나게 되지요. 김용준이 그렇게 아끼던 감나무는 김환기가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땔감으로 써버립니다. 이후 뉴욕에서 자리를 잡은 김환기는 성북동에서 가까이 지내던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읽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 연작을 발표하면서 화가로서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김향안이나 김광섭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김환기는 없었을지 모릅니다. 사람 사이,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성장하는 게 문학과 예술의 밑천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아래는 김환기가 냈을 법한 목소리를 가정해서 쓴 시입니다.

 

 

양식을 빌지 못한 가장 대신

늙은 감나무가 베이고 말았소.

차라리 나를 패서 땔감으로 하지 그랬냐고.

말끝에 바늘을 냈더니

굶어 죽든지 얼어 죽든지 하는 판에

생목숨이 나무목숨보다 헐하냐고

향안이 따져 묻는데 그저

나무에게든 누구에게든 미안한 마음뿐이오.

수화 소노인이라고

용준 형이 장난삼아 써준 이름이 내 실질이 되었소.

전쟁 통에 아예 노인이 되어버린 듯하오.

서운하게도, 용준 형의 감나무만은 더 늙지 못하겠구려.

애초에 늙은 감나무 좇아 이사 올 때

태준 형이 선물한 이름이 노시산방인걸 아오.

그런 감나무를 당신에게 물려받으며

수화 양반, 향안 각시 한집 되었다고 수향산방이라 했소.

늙은 감나무 보러 예까지 온 용준 형

명랑한 그림 한 점 장난해 준 걸 기억하오.

키 큰 수화 더 크게

키 작은 향안 더 작게

감나무의 감들은 저마다 배꼽 내서 웃게

저 아래 이태준네 아이들 얼굴처럼 개구지게…….

한데 다 지난 일이오.

피난 열차에서 부산항까지

마른 감꼭지 같은 사람들을 지나오면서도

그 위로 조선백자 같은 달이 뜰 걸로 믿었건만

이젠 슬픔 없이 그릴 수 없다오.

용준 형도 태준 형도

잡고 울,

늙은 감나무도 없으니.

 

졸시, 수향산방 전경 - 수화 김환기의 말전문

 

(* 김용준, <수향산방 전경>(1944) - 화가 김환기 부부가 김용준의 노시산방(老枾山房)을 인수해 수향산방(樹鄕山房)으로 이름을 바꾼다. 이제 집도 주인도 바뀌어 그림으로만 옛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 김용준, <수화 소노인 가부좌상>(1947). / 김환기, <피난열차>(1951), <부산항>(1952).)

 

지금까지, 시를 살게 하는 힘이 뭔지 대강 말해보았습니다. 지난 시절 만났던 사람과 책, 결핍감과 상처, 사람 사이 관계를 언급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또 다른 상황과 섞여 있을 것입니다. 직접 공부하거나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을 쭉 나열한대도 여전히 설명이 부족할 줄 압니다. 그럼에도 시와 산문을 살게 하는 일은 저를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함을 생각합니다. 시와 산문을 읽고 쓰고 누리며 나누는 일이야말로 인생을 깊게 또 풍요롭게 사는 일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끝으로 함께 보고 싶은 시 작품은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백석입니다. 오리 망아지 토끼는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이지만 백석이란 천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힌트를 주는 듯해서 흥미롭게 읽힙니다.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나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 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다 던져버린다

 

장날 아츰에 앞 행길로 엄지 따러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크다란 소리로

매지야 오나라

매지야 오나라

 

새하러 가는 아배의 지게에 치워 나는 산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 난 토끼굴을 아배와 내가 막아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오리 망아지 토끼백석

 

(* 동말랭이 : 동쪽의 등성이 / 엄지 : 짐승의 어미 / 매지 : 망아지 / 새하러 : 나무하러)

 

 

백석이 유년 시절을 그것도 아버지와 추억이 어린 장면을 떠올린 내용입니다. 저는 다른 무엇보다 이 시에서 수용적인 아버지 상을 보았습니다. 이후 백석은 부모가 정해준 혼처를 번번이 박차고 나오며 부모와 불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작품에 드러난 그의 따스한 인간애와 자유로운 정신은 철모르는 아이를 따스하게 품은 사랑에 빚지고 있었음을 알겠습니다.

백석은 소중했던 한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카메라 필름 대신 종이에 장면 장면 옮겨 놓았습니다. 이처럼 의미 있는 어느 순간을 어떤 식으로든 남겨놓고 싶다는 욕구가 창작의 큰 동력임을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또한 남에게도 공감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게도 한다는 사실을 백석이 보여주었습니다. 백석, 이태준, 고흐, 권정생…… 자기 삶을 열심히 기록했던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다녀간 흔적으로 이만한 자랑도 없을 겁니다. 재미난 책과 아름다운 사람을 좇아 시를, 예술을 살아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