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 이민숙
빵을 좋아하진 않았다 떡을 좋아하는 내가 어느 날 빵 냄새에 환장하게 된 건, 다 도스또예프스키 때문이다. 죽음의 집 시베리아에서 보낸 5년 동안, 그가 먹었던 아니 먹을 수 없었던 빵, 냄새가 사시사철 폴폴 솟아나고 있는 우리 동네 빵가게에 가서 빵 서너 개를 사다가 식탁 위에 올리던 날, 그 빵이 얼마나 감격이었는지 모른다 배고픈 날, 한 조각의 빵을 아끼기 위해 외투 주머니 속에 꿰매어 넣고 그 빵을 사모하며 옥살이를 했던,
어떤 국가든 인간을 굶주리게 한다 인간의 굶주림은 바로 국가로부터다 법도 제도도 인간의 타락과 죄와 굶주림의 원천적 구제책을 모른다 아니 그럴 생각이 없다 빵은 위대하다 저 고소한 냄새 때문에 죄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 유형의 시간들이 빵을 위대하게 한다 그 빵의 힘으로 자유를 바라보며 견딘 시베리아 형무소의 문을 열고, 마침내 태양 아래로 걸어 나오고 있다
- 『지금 이 순간』, 고요아침, 2020
감상 : 강제 노동과 극소량 배급으로 기아로 인한 죽음이 줄줄이 이어지던 전근대의 수용소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빵 한 조각을 아끼기 위해, 외투 주머니 속에 꿰매어 넣고” 다니던 사연이 있었나 보다. 출처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수용소의 경험을 『죽음의 집의 기록』으로 남겼다니 거기 있을 것도 같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온 빅터 프랭클도 있다. 그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도 주머니 속 빵 한 조각을 아끼기 위해 당장의 유혹을 견디는 내용이 있다.
빵을 싫어하던 시인은 빵에 목숨 거는 이런 사정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에 이끌려 그만 빵이 좋아졌단다. 전에 없이 가게의 빵 냄새에 취하고, 식탁의 빵 하나하나에 감격스러워 한다. 빵의 위대함이나 빵의 가치는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 빵을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생긴다. 국가니, 법이니, 제도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은 오히려 빵을 위대하게 섬기는 사람들로부터 그 빵을 빼앗아서 배부른 사람의 몫으로 돌려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상당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수전노를 살해하고 라스콜니코프가 혼란에 빠지는 얘기이니, 빵을 나누지 않는 세태에 대한 작가의 무의식적인 반발도 있었으려니 싶다. 죽음의 공포나 빵에 대한 굶주림을 뼛속 깊이 체험해본 것이 작가의 문학적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은 별도로 고민해볼 문제다.
시인은 빵의 힘으로 자유를 바라보며 닫힌 문을 열고 나온다고 했다. 빵 훔친 장발장에게 징역형 대신 우유까지 내주자면 짐작컨대 시인은 좋아할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빵은 최소한의 생계로도 읽힌다. 식비, 집세, 병원비 걱정 덜고, 사람 사이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지, 평등을 얼마큼 품고 살아야 하는지 힘내서 떠들 수 있도록, 절실한 사람의 입에 빵이 물려야 마땅하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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