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생불(生佛) / 우정연

톰소여와허크 2022. 1. 13. 15:35

생불(生佛) / 우정연

 

 

재만 아재는 정선 아재와 항상 어디든 함께 다닌다

그들은 마르고 키가 작아서

둘의 몸무게, 합이 일인분

 

똥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바닥까지 도착하는 데

한 삼백 년 걸린다는 해우소와 절 구석구석 당연한 듯

궂은일 하면서 둘의 공양, 합이 일인분

 

병이 난 재만 아재 진득하니 입원도 못하고

낡아빠진 허리와 바람 드는 정강이 안중에 없이

절집 살림 할 일도 태산, 둘의 걱정, 합이 일인분

 

구구 절절한 사연, 큰 법당 부처님은

다 알고 계실 터이지만 아재가 아프거나 말거나

입 무겁고 태평한 부처님 미소, 합이 항하사

 

절집은 절로절로 저절로 잘 돌아가고

관광객이 봄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도

아재들이 없으면 텅 빈 절간이다.

 

자작나무 애인, 문학아카데미, 2020.

 

 

감상 선암사 뒷간(해우소)은 어제 눈 똥이 내일 되어야 바닥에 떨어질 거라는 얘기가 있고, 중암암 해우소는 정월 초하루에 눈 똥이 섣달그믐에 떨어질 거라는 얘기가 있다. 시인이 목격한 해우소는 똥 떨어지는 데만 삼백 년이니 꽤 세게 나가긴 했다. ‘’(무한한 시간)이나 항하사’(갠지즈 강의 모래알처럼 무한히 많은 것)에 나타나는 불교식 과장과 맥이 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시인은 뒷간 바닥이 길고 긴 어느 절집의 살림을 맡고 있는 두 분의 거사(居士)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두 사람은 욕심 없이 야위었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인분이란 말처럼 한몸으로 공양하고, 한마음으로 보살행(菩薩行)에 나선다. 한 사람이 아프지만 걱정조차 분리되지 않고 일인분이다. 절집에 모신 부처는 두 사람의 든든한 백이지만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실제 절집이 괜찮은 공간이 되게끔 하는 건 두 사람의 몫이다.

시인은 이 두 사람을 생불로 여긴다. 부처가 있어도 이들 두 사람이 없으면 텅 빈 절간이다. 진짜 부처는 목석이나 금동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 도움 되는 일을 성심으로 행하는 데 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이 행한 일은 단순하지만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조그마한 근심 하나 푸는 데도 삼백 년이 걸릴지 모르니 말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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