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귀향 / 조세림

톰소여와허크 2022. 8. 11. 15:14

 

귀향 / 조세림

 

 

팔월달 이랑진 바다 위로

산악(山岳) 같은 배는 비트적비트적 육중한 몸을 옮긴다

 

손들면 만저질 듯 함폭 내려앉은 하늘

한여름 따가운 햇살이 이글이글 뱃전에 흐르고

저 멀리 대륙의 변두리를 스쳐온 바닷바람에

머리칼은 하늘에 대고 넥타이는 깃발처럼 펄럭인다

 

담배도 사랑도 오늘은 시들하다

눈초리를 저기 아득한 수평선 위에 던지고 팔짱을 끼니

가슴속 설레는 피의 파도 귀에 아련히 들릴 듯싶다

 

고향 떠난 지 십 년째

옛 그날 내 양자(樣姿) 그려 고요히 눈감으니

떠오르는 건 몹시도 여위어진 고향의 얼굴

문득 황소처럼 소리쳐 울고 싶구나

 

-『세림 시집(시원사, 1938) /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선우미디어, 2000)

 

감상 영양 주실마을 동구 숲엔 조지훈 시비와 함께 조세림(본명 조동진) 시비도 있다. 조지훈의 시비엔 빛을 찾아가는 길, 조세림의 시비엔 국화가 새겨져 있다. “빛을 찾아 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는 시구 중 슬픈 구름에서 조지훈의 슬픈 가족사도 떠오른다.

조지훈 가족에게 드리운 슬픈 구름의 가장 큰 덩이는 전쟁으로 말미암은 거다. 피난을 가지 못한 아버지와 여동생(조동민)의 남편이 납북되고 만다. 막내 조동위는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사망하고 조부는 고향에서 자결한다. 맏이인 조세림은 뒤의 일을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하나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를 이기지 못하고 일찍 요절했다.

조세림(1917-1937), 조지훈(1920-1968) 형제는 마을 월록서당에서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십대에 꽃탑이란 마을 문예지를 만들기도 했다. 사회의식이 드러난 연극을 공연해서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이웃 감천마을의 오일도 시인이 서울에서 시원사란 출판사를 차렸을 때 나란히 상경해서 출판사 일을 도왔다. 한의학자인 아버지 조헌영이 인사동에 세운 사무실 겸 책방, 일월서방 일을 아버지를 대신해서 운영하기도 했다.

조세림 사망 후, 오일도와 조지훈이 주도하여 사후 시집을 출간하니 바로 세림 시집이다. 현존하는 세림 시집은 몇 권 남아있지도 않겠지만 조동림이 삼남매 시집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을 출간하면서, 세림 시집내용을 그대로 가져오니 조세림 시의 면모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오일도는 시집 서문에서 군의 시는 전편이 그 운명에 대한 비통한 울음과 우울의 모습과 반항의 정열로 충일되어 있다. 군의 시는 무엇보다 자기를 속이지 않고 자기에게 충실한 시, ‘시즉기인’(詩卽其人)이란 말은 군을 위하여 더욱 지언(至言)이라 하겠다는 말로 시의 분위기를 적실하게 알려준다.

비통한 울음이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닌 것이 실춘보(失春譜) 같은 작품이 증명해준다. 시 내용은 버들가지 물오름도 부질없는 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농민의 굶주림과 그로 인한 도주나 이주, 참다못한 도적질로 이어지는 현실 고발적 내용과 함께 문학 재능을 감안하자면, 시인이 이십 대만 견디고 살았어도 이용악의 낡은집에 버금가는 성취를 이루었을 걸로 짐작이 된다.

귀향이란 작품도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한 것인지 시적 허구를 일부 빌린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스무 살 즈음의 청년 내면이 쓸쓸하고도 투명하게 그려졌다. 그의 고향마을은 일월산에서 내린 반변천이 지나가는 곳이지만 바다를 직접 볼 수 있는 고장은 아니다. 아마도 울진 평해쯤 나아가서 바다를 오가는 기선과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기억을 되살려 고향에 돌아온 감정을 풀어놓았을 수도 있겠다. 바닷바람에 머리칼과 넥타이를 날리며 가슴의 피도 설레는 기분을 내지만 여위어진 고향의 얼굴에서 보듯 고향은 어떤 꿈도 키워줄 성싶지 않다.

귀향에 앞서, 향수 1에서 조고만 보따리 큰 뜻을 품고 / 동구숲 떠나온 지 어느덧 몇 가을 // 약속 없는 인생의 길 싸늘한 거리에서 / 헛되이 청춘은 여위어가나니라고 했던 걸 보면, 조세림 시인은 고향을 떠나서도 고향에 돌아와서도 자신의 꿈을 펼 수 없는 현실에 깊이 좌절하고 탄식하고 있는 셈이다. 1920, 30년대 일제의 수탈이나 조선인 차별 정책, 사회빈곤이나 실업 등 식민지 젊은이들이 부딪치는 현실의 장벽들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더해, 애가, 풍년송에 거듭 나타나는 이란 여성과의 이별도 상실감에 한몫을 한다. 가족을 따라 북쪽으로 떠나는 을 배웅하며 시인은 십리 길을 눈물 적신다. ‘은 공교롭게도 백석 시인이 통영(1936)에서 그리워하던 사람에게 붙인 별칭이며 백석에게 깊은 상실감을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동구 숲, 조세림 시비엔 시인의 끝을 예감하듯 길게 살아 무엇하리 오래 살아 무엇하리 / 끝내 구슬픈 삶일 양이면// , 국화 외로운 내 마음아 / 처량한 바람소리에 가슴이 째진다”(<국화> )란 시구가 적혀 있다. 영양 주실마을에 들를 것 같으면 조지훈 문학관도 봐야겠지만 동구 숲을 빼놓으면 몹시 섭섭할 일이다. 황소처럼 울고 싶었다는 시인의 육성까지 기억한다면 지나는 이의 마음 한 쪽도 얼얼해질 것이다. (이동훈)

 

 

 

'감상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城) / 구자운  (0) 2022.08.28
촐촐하다 / 홍해리  (0) 2022.08.21
시인들의 술상 / 김완  (0) 2022.08.05
반려 / 노천명  (0) 2022.07.27
집밥 / 권상진  (0) 2022.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