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오래된 칼 / 이향지

톰소여와허크 2024. 3. 7. 20:25

오래된 칼 / 이향지

  

부엌에 있습니다. 부엌칼입니다. 날 끝에서 손잡이까지 5촌쯤 됩니다. 제 날은 두껍습니다. 손잡이가 헐거워져 부목을 대고 칭칭 철사를 동였습니다. 여기저기 이빨이 빠지고 긁힌 자국들이 자우룩합니다. 제겐들 왜 촌철살인의 의지 없겠습니까? 저는 죽은 고기들이나 썹니다. 죽어서 부뚜막까지 밀려온 것들이 무덤의 문턱을 먼저 알아봅니다.

 

날렵한 날을 섬광 속으로 디밀고, 눈앞의 공기를 썩썩 베며 번쩍이고 싶은 욕망, 제겐들 왜 없겠습니까? 제 날은 무겁고 짧습니다. 죽은 고기들이 투박한 날을 이리저리 피하며 애를 먹일 때마다 남은 날을 가혹하게 칼갈이에 들이댑니다. 오른손으로는 칼을 잡고 왼손으로는 칼갈이를 잡고 이날 저 날 뒤집어가며 쓱쓱 문질러 이 빠진 날들을 일으켜세우는 겁니다. 제 날이 날카롭게 서는 만큼 제 날은 짧아집니다.

 

이제 제 날은 2촌도 안 남았습니다. 죽은 고기들이나 썰면서 강철의 날들을 이토록 축내다니! 이제는 제 날이 저를 겨눕니다. 2촌도 안 남은 날이 저를 겨누는 겁니다. 자책과 비애가 물 끓듯 저를 끓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날을 좀더 가혹하게 칼갈이로 갈아댑니다. 제 날은 머지않아 1촌도 안 남을 겁니다. 1촌도 안 남은 날 끝이 제 심장을 겨눕니다. 아아,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제 날의 성공을 빕니다.

 

-『내 눈앞의 전선, 문학동네, 2023. / 천년의시작, 2003.

 

감상 2003년에 나온 내 눈앞의 전선서문에서 시인은 얇디얇은 존재 하나를 뚫고 나오는 데 60년이 걸렸다고 하더니, 그로부터 또 20년이 지나 복간된 시집 서문에선 너머의 말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너머는 멀리 떨어져 가보지 못한 저편을 일컬으면서 때로 이쪽에 있으면서 저편으로 떠가는 뭉게구름에 그리움의 정조를 얹어보게도 되는 그런 공간이다. 이향지 시인은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너머를 감상 대상으로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너머를 탐색한다. 탐색 대상이 너머의 말로 구체화된 것은 가 닿고 싶지만 좀처럼 언어화되지 못한 한 편의 시에 대한 간절한 바람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오래된 칼에서 그런 마음을 다시 한 번 더 읽게 된다. 시인이 오래 사용한 부엌칼은 장식용은 아니니 외관은 애초에 관심 밖의 일이다. 오직 쓸모를 생각하며 무뎌진 날을 가다듬는다. 시인이 날을 가다듬는다는 것은 짧은 말로 울림을 주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지를 꿈꾸며 스스로 담금질한다는 것이다.

삶의 이력이 더해가면서 죽은 고기 대신 자기 자신을 타깃 삼는 시인은 칼날이 서지 않는 날은 자책과 비애로 마음을 끓이면서 날을 벼리고 또 벼린다. 그런 중에 시인은 제 날이 날카롭게 서는 만큼 제 날은 짧아집니다는 경구를 얻는다. 칼갈이에 무수하게 갈고 닦으며 칼날이 짧아지는 동안 심장을 베며 심금을 울릴 촌철살인 같은, 심검(心劍) 같은 인생 시 한 편도 다가오지만 그걸 이룰 남은 날도 많지 않다는 인식도 겹쳐놓은 것이다.

이처럼 아주 드물게는, 자기 안의 에너지를 연소하며 시에 목숨 거는 시인이 있다. 단 한 번의 쓸모를 다하여 애초에 꿈꾸던 너머의 말에 닿아 있기를 소망하는 그들이다. 하지만 신생의 칼도, 오래된 칼도 너머를 찾는 순간 너머그 너머로 멀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대표시가 뭐냐고 물으면 아직 쓰이지 않았다고들 얘기하는 것일 테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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