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취나물 / 허림
미역취 미나리싹 쑥 어수리를 뜯고 산비탈에서 두릅 따다 들켰다.
거기서 내려오세요.
왜요?
내려오세요. 당신 거 아니잖아요.
그럼 당신 건가요?
네.
미안해요. 몰랐어요.
내 것 아니면 손대지 말아야죠. 어서 내려와요.
혼내실 건가요? 그럼 안 내려갈래요.
왜요?
혼내실 거잖아요.
일단 뜯은 거나 봅시다.
그냥 보내줄 거죠?
내려와서 얘기하자구요.
내려오면서 그 뒤에 있는 두릅 두 개도 따가지고
내려오세요.
-『다음이라는 말』, 달아실, 2023.
감상 - 헷갈리는 식물 이름이 한둘일까 마는 그중에서도 산형과 식물이 더 그렇다. 산형과는 꽃대의 끝에서 많은 꽃이 방사형으로 뻗은 모습인데 미나리, 뚝갈, 구릿대, 바디나물, 등골나물, 어수리 등 국내에서만 80여 종을 이룬다고 한다.
이중에 ‘어수리’ 역시, 다른 산형과와 확연히 구별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 식물이 그 식물 같은 인상도 주지만 그 맛과 향이 좋아서 밥상의 격을 높여주는 면도 있다. 어중간한 가운데서도 정이 가고 실제로 알뜰한 쓸모까지 있는 식물인 셈이다. 어수리의 어원을 임금에게 바치는 음식이라는 후대의 설도 있지만 ‘어수룩하다’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김종원(『한국식물생태보감』)의 추측에 신뢰가 간다. ‘어수룩하다’는 ‘겉모습이나 언행이 치밀하지 못하여 순진하고 어설픈 데가 있다’는 뜻으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위 시의 제목인 ‘어수룩취나물’이란 종은 없으나 ‘어수리’와 ‘어수룩’의 연관성과 시 내용을 생각하면 어쩜, 상황에 딱 맞게 작명해냈을까 싶다. 시 속의 화자는 어수리를 뜯고 산비탈의 두릅에 눈이 간다. 주인이 있는 땅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데 두릅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후자 쪽이라고 애써 여겼을 것이다. 마침 주인의 눈에 띄어서 민망한 상황을 맞이했지만 주고받는 말 속에서 주인도, 나물 도둑도, 독자도 다 슬며시 웃게 된다.
“내 것 아니면 손대지 말아야죠”라는 주인의 말은 틀린 게 없다. 다만, 의사소통의 경우 말의 의미가 일차적으로 중요하겠지만 말에 동반되는 목소리 톤이나 표정 등 비언어적 태도로 소통하게 되는 경우도 잦다. 만약 주인이 고압적이거나 화난 목소리였다면 이를 대하는 화자의 태도도 달랐을 것이다. 주인과 대화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는지 화자는 용서를 구하는 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주인 역시 속내를 감추며 그런 소통을 즐긴다. 어쩜 추가로 따게 된 두릅 두 개는 고추장에 박혀서 두 사람의 막걸리 안주가 될 거 같은 은근한 그림도 그려진다.
이익과 손해에 민감한 세상살이지만 그럴수록 잇속을 따지지 않는 어수룩한 사람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셈이 흐린 사람끼리 모여앉아 미나리 무침, 어수리 나물 한 접시 받아두고 탁주 한 잔에 기울고 싶은 봄날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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